일부 '자살 충동'..전문 심리치료 시급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인구 1천900여명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정겨운 농어촌마을이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갈등 이후 반대측 주민 A씨는 사거리의 한 식당에 발걸음을 끊은 지 오래다.

식당 주인이 찬성측이라 의가 상해 서로 인사도 건네지 않는다.

그는 식당에 갈 일이 있으면 멀더라도 해군기지 반대측 집을 찾는다.

마을 사거리에 서로 마주한 가게의 손님들 역시 주인의 성향에 따라 찬성이나 반대측 한쪽만 찾는다.

마을에서 평생을 지내온 B(73) 할아버지는 "해군기지 문제로 조카와 싸우고 나서는 명절과 제사도 따로 한다"며 "내 생에 무슨 잘못이 있어 이런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지난 12일 오후 4시께 강정마을에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왱∼'하고 길게 울려 퍼졌다.

때마침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귀가하는 초등학생 6학년생 C군(11)에게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C군은 초등학교 입학 때인 2007년부터 마을이 둘로 갈려 싸우는 모습을 보아왔다.

반대 활동이 거세지면서 마을에는 사이렌이 자주 울렸고 그때마다 경찰과 주민들이 내달리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지건설 반대측인 D(38)씨는 "초등학생과 유치원 아이들이 '해군' 하면 '반대'하고 따라 한다"며 "처음에는 귀여웠지만 점점 걱정이 돼 기회가 된다면 심리치료를 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정 마을에서는 D군의 부모처럼 자신이 찬성하든 반대를 하든 2세들까지 갈등의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이 적지않다.

또한 자신들도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 치유대책이 시급한 상태다.

서귀포신문이 지난 2009년 9월 강정 주민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민 10명 중 4∼5명이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40%가 넘었고, '적대감' 증세를 보인 주민이 57%를 차지했다.

우울(53.1%), 불안(51%), 강박(50%) 증상도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는 표본이 찬성이나 반대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인 비율이 82.6%가 된 상태에서 나온 결과로, 찬반에 관계없이 양측 모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결과로 해석됐다.

지난해 6월 한 주민은 스트레스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지난달 초부터 강정마을에서 주1회 심리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현성숙 한양대 교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간이정신진단검사를 해보면 대부분 우울증과 공포, 강박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주민들이 경계심이 많고 낯선 사람을 똑바로 보지 않는 편"이라며 "어떤 주민과 활동가는 '집에 들어와 혼자 있을 때 심한 우울감과 공포를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경계심이 커져 터 놓고 이야기하려 하지 않아 더 큰 문제"라며 "앞으로 해군기지와 관련한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그동안 쌓인 정신적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귀포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ko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