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날개' 단 권오철…"엘피다 추락에 공급 늘려달라는 곳 많다"
권오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자신감과 여유가 넘쳤다. 양복 상의엔 SK의 ‘행복날개’ 배지가 반짝였다. 기자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면서 내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농담을 던졌다.

하이닉스에 호재가 잇따르고 있다. SK텔레콤이란 든든한 ‘돈줄’이 생겼고 D램 경쟁사인 일본 엘피다메모리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D램 값은 4개월여 만에 반등했다. 권 사장은 1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반도체 시장전망과 투자계획을 설명했다. SK텔레콤이 신주대금 2조3000억원을 납입해 인수를 마무리지은 지 꼭 한 달을 맞은 날이다.

◆“엘피다 반사 이익 가시화”

'행복 날개' 단 권오철…"엘피다 추락에 공급 늘려달라는 곳 많다"
권 사장은 지난달 27일 일본 엘피다의 파산보호 신청 이후 “공급량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밝혔다. 고객사들이 엘피다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기 불안해 한다는 얘기다. 그는 “시장이 1년 이상 침체되면서 외국 경쟁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사적으로 한국 업체가 시장 영향력과 위상을 올릴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엘피다가 어떤 식으로 통합되느냐에 따라 유불리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투자 여력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누가 가져가든 정상화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D램 값이 꿈틀대고 있다. 3월 전반기 DDR3 2Gb(256M×8 1333㎒) 제품의 고정거래가격은 1달러로 올라 4개월 만에 1달러 선을 회복했다. 권 사장은 “엘피다 사태 등으로 올해 D램 시장의 공급 증가율은 어느 해보다도 낮을 것”이라며 “올해 중·후반부터는 지금보다 훨씬 개선된 시장 여건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1분기까지의 실적이 급격히 회복되기는 어렵겠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낸드에 집중한다”

하이닉스는 올해 낸드플래시를 집중 육성한다. 권 사장은 “사상 처음으로 한 해 투자액의 55%를 낸드에 투입한다”고 말했다. 올해 투자액 4조2000억원 중 2조3100억원을 쏟아붓는다는 얘기다. 그는 “SSD(낸드를 이용한 대용량 저장장치) 성장으로 활발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며 “지난해 4분기 11%였던 낸드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선 삼성전자에 이어 2위지만 낸드플래시에선 삼성 도시바 IM플래시에 이어 4위다. 그런데 지난달 말 인텔은 IM플래시 지분을 합작사인 마이크론에 매각했다. 권 사장은 “인텔이 더 이상 낸드에 투자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며 “마이크론 단독으로 D램과 낸드 모두 운영해야 하는 상황으로 우리에겐 불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이닉스는 청주공장에 낸드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총 5조원을 투입하는 공사가 내년 초 끝나면 3위 탈환에 나선다. 권 사장은 “중국 우시 공장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우시에서도) 낸드를 생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 셀 수 없이 다녀가”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달 하이닉스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권 사장은 “최 회장이 반도체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하이닉스에 몇 번 다녀갔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권 사장은 회장과의 역할 분담에 대해 “일반적인 사업 운영은 저와 경영진이 담당하며, 회사에 전략으로 중요한 결정은 최 회장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권 사장은 SK텔레콤과의 시너지에 대해 “모바일 시대에 통신사와 모바일용 메모리업체가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하이닉스가 스마트폰, 태블릿PC 회사들과 협력하고 있고 통신사도 이들과 같이 일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하이닉스는 오는 23일 주총을 열고 사명을 ‘SK 하이닉스(SK hynix)’로 바꾼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