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만 남은 시민체육관, 곳곳에 뒤집힌 車·어선 '쓰나미 상처' 아물려면 아직…
‘까악~까악~.’ 인적이 끊긴 거리. 얼굴을 때리는 강한 바람에 까마귀 울음이 섞여 있다.

기분 탓일까. 등이 서늘하다.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이와테(岩手)현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사망자만 1852명에 달한 곳이다. 해안가에 인접한 시민체육관에 차를 댔다. 정문 앞에 집채만한 기념비석이 놓여 있다. “용케도 버텼네”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념비석의 글씨가 거꾸로다.

입구에 마련된 조그만 분향소에서 잠시 묵념한 뒤 실내로 들어갔다. 산더미처럼 쌓인 잔해. 축구공 농구공이 바람결 따라 이러저리 굴러다닌다. 외벽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실내에 있어도 밖이 훤히 보인다. 체육관 중앙으로 눈길이 갔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 순간 당황했다. 농구장 마룻바닥 한가운데는 만신창이가 된 자동차가 배를 드러내고 뒤집혀 있다.

체육관을 나왔다. 폐자재를 실은 트럭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봤다. 10분 정도 떨어진 다카타고등학교. 거의 뼈대만 남은 별관 건물 한쪽에 ‘고시엔대회 출전기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작은 비석이 나뒹굴었다. 누군가 그 옆에 자그마한 향을 피워 놓았다. 때묻은 야구공도 보였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다 잠시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지진만 없었다면, 쓰나미만 덮치지 않았다면. 지금도 까까머리 선수들의 함성이 가득했을 교정이다. 그 교정이 재난영화 세트장처럼 변해 있었다.

이와테현의 리쿠젠타카타, 미야기(宮城)현의 게센누마(氣仙沼), 이시노마키(石卷) 등 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집중됐던 동북부지방 해안가를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둘러봤다. 꼬박 1년이 지났지만 대지진 피해지역은 그때 그대로였다. 눈에 보이는 거리 정도만 정리가 됐을 뿐 나머지는 폐허 그 자체였다. 일본 부흥청 발표 자료를 봐도 피해 복구작업은 무척 더디다. 작년 대지진으로 발생한 건물 폐자재는 총 2252만8000t. 이 중 처리가 완료된 것은 117만여t에 불과하다. 1년간 고작 5% 정도만 치운 것이다. 원전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현은 출입이 통제돼 쓰레기에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환경상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2014년 3월 말까지 쓰레기 처리를 마무리하기로 목표를 잡았지만 현재의 추이대로라면 달성이 매우 어렵다”고 시인했다. 일본 정부는 피해지역의 힘만으로는 쓰레기 처리가 어려워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분산해 처리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 오염 등의 문제가 있어 순조롭지만은 않다. 동북부 3개 현을 제외한 전국 44개 현 가운데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곳이 절반을 넘을 정도다.

부흥예산의 집행도 부진하다. 일본 정부는 작년 5월과 7월 각각 통과된 1, 2차 추경을 통해 6조7000억엔 규모의 대지진 복구예산을 편성했다. 이 중 작년 말까지 쓰인 액수는 전체의 55%인 3조7000억엔에 불과하다. 그나마 금융회사 지원 등 손쉬운 부분에만 예산 집행이 이뤄졌다. 사회 인프라 정비에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상태다. 도로와 제방, 하수도 피해 복구를 위한 예산 집행률은 3.8%에 그쳤고,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공영주택 건설과 댐 수리 등 16개 사업에는 아직 단 한푼도 쓰지 못했다. 학교 시설 복구를 위한 예산도 70%는 아직 낮잠을 자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예산을 집행해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인력 부족으로 예산 신청을 하지 못하거나 정부의 시책과 현장 상황이 맞지 않아 예산 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뼈대만 남은 시민체육관, 곳곳에 뒤집힌 車·어선 '쓰나미 상처' 아물려면 아직…
리쿠젠타카타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게센누마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1500여명이 실종되거나 숨진 이곳은 큰 화재까지 겹쳐 유독 피해가 컸다. 항구 인근에 있던 정유공장이 폭발하면서 기름을 머금은 불길이 도심으로 그대로 밀려들어왔다. 일본 동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미항이었지만 이젠 옛날 얘기다.

바다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곳곳에 황당한 풍경이 펼쳐졌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파출소 옆에는 바닥이 빨간 어선 한 척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바다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두 척이 아니었다. 시시오리(鹿析)라는 동네는 뭍에 올라온 대형 선박으로 아예 명소(?)가 됐다. 쓰나미에 쓸려 온 총길이 60짜리 ‘제18 교토쿠마루(共德丸)호’. 게센누마시는 배를 그대로 남겨두고 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고지대 쪽으로 올라가자 가설주택이 눈에 띄었다.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피해지역 주민들이 한시적으로 머무르는 곳이다. 6개월가량 이곳에서 생활했다는 가미야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1년 반 정도만 지나면 가설주택에서도 나가야 합니다. 거주기간이 2년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죠. 정부가 새로운 부흥주택단지를 마련한다고 하지만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집세를 낼 수 없습니다. 쓰나미에 날아가버린 집도 아직 대출금을 다 못 갚았는데….”

이재민을 위한 주거시설 확충이 시급하지만 공사 추진 실적은 답보 상태다. 작년 한 해 공영주택 건설이 시작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미야기현은 2016년 3월까지 해안지역 15개 시·정·촌에 1만2000가구를 새로 지을 계획이지만 여전히 검토만 거듭하고 있다. 우선 부지 확보가 어렵다. 착공 예정지의 상당 부분이 민간 소유여서 예산을 확보해 매입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2000가구 이상을 계획 중인 센다이(仙台)시가 지금까지 확보한 부지는 600여가구분에 불과하다. 폐교 등 공공부지를 최대한 끌어 모으고 있지만 목표량을 채우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건설 인력도 모자란다. 일단 피해지역 인구가 급감했다. 동북부 3개현에서만 작년 한 해 4만명이 빠져나갔다. 대부분 젊은 세대다. 다른 지역 주민들도 피해지역에서 일하는 것을 꺼린다. 군지 도시아키 도다건설 동북지사장은 “아직 필요한 인력의 4분의 1밖에 구하지 못했다”며 “건설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인건비도 예년보다 10% 이상 높아졌다”고 말했다. 갑자기 수요가 몰린 탓에 건설자재 가격도 상승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동북부 3개현이 최근 실시한 공공공사 입찰 가운데 20%가량은 아예 응찰기업이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이와테·미야기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