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암초 만난 M&A 시장
“차(車)와 포(包)를 떼고 장기를 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부티크(소규모 투자자문사) A사 대표의 말이다. 대기업들의 사업 확장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다보니 매물이 나와도 소화가 안 된다는 하소연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다 빵집, 자전거, 수족관 등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매매 대상이 될 수 없는 업종의 목록이 갈수록 늘어간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M&A 전문가들이 요즘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대기업들의 극심한 눈치 보기’다. 매물이 나와도 인수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몸을 사리다보니 매매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웅진코웨이가 대표적이다.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를 팔겠다고 발표했을 때 M&A 시장의 관심은 과연 누가 살 것이냐에 쏠렸다. 인수 후보로 굴지의 가전업체 B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거론됐다. 정작 후보로 언급된 기업들은 거의 ‘경기(驚氣)’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B사 관계자는 “방문판매업에 대기업이 뛰어든다고 하면 누가 납득하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정서는 GS리테일이 하이마트 인수를 포기하는 배경으로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GS그룹은 실적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인수 협상을 하다보면 값을 깎아야 할 일이 생기는데, 대기업이 값을 후려친다는 비판이 나올 경우 감당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反)대기업 정서로 인해 삼성그룹의 호텔신라가 포기키로 한 제빵점 ‘아띠제’도 마찬가지다. 호텔신라는 막상 사업을 접기로 했지만 처리방안이 마땅치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팔았으면 좋겠지만 ‘재벌 빵집’을 사려는 기업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처리를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M&A부티크 대표는 “자녀가 상속을 꺼리거나 경쟁이 치열해졌을 때 중소기업주들은 매각을 고려하게 마련”이라며 “과거엔 매물로 나온 중소기업을 대기업들이 소화했으나 최근 들어 이 메커니즘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M&A시장은 자본시장의 꽃이다. 이 시장마저 경제 이외의 논리에 휘둘리다간 알짜배기 기업조차 인수할 주체를 찾지 못해 문을 닫는 상황이 나올 것 같다.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