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설립 과정에서 기업가 고(故) 김지태 씨의 재산이 강제 편입되긴 했지만 시효가 지나유족들이 재산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5·16 군사쿠데타 후 재산을 헌납하라는 군사정권의 강요를 받고 고인이 부산일보,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정수장학회(당시 5·16 장학회)에 넘겼다고 주장하며 유족들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24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당시 정부의 강압으로 장학회에 주식증여 의사를 밝힌 점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주식을 증여한 1962년 6월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고인이 증여를 취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소할 권리는 이미 사라졌다”고 판결했다. 유족 측은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인 1980년 4월 고인이 장학회에 주식 반환을 청구한 점을 들어 취소권이 남아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증여 당시 고인이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강박의 정도가 강했다고 볼 수 없어 행위 자체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국가의 배상책임에 대해서도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인정하지 않았다.

부산 지역의 기업인이었던 고인은 1962년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된 상태에서 주식 등 재산을 증여하기로 한 후 풀려났으며, 고인이 증여한 재산을 기반으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 장학회가 설립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정수장학회 재산을 원상복귀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를 했고, 유족들은 정수장학회의 주식 반환 및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