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통, 통, 통!
작년에 캄보디아 바탐방 지역 주민 50여명을 3박4일 동안 한국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본사가 있는 서울 63빌딩과 주요 공장, 그리고 경복궁, 민속박물관, 한국의 집, 북촌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며 한국의 전통을 소개했다. 그들과 우리는 서로 생김새와 언어가 달랐지만 그런 외적인 문제는 의사소통에 큰 장애가 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방문 첫날밤에 여지없이 깨졌다. 일정을 마치고 서울의 유명 호텔에 모여 숙소를 배정할 때였다. 그들은 높은 호텔 건물에서 잘 수 있다는 생각과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아이들처럼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다음날 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한 사람씩 객실 열쇠를 나눠줬다. 그리고 마무리 인사와 함께 그들을 뒤로 한 채 회사 진행요원들과 호텔 회의실로 이동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호텔을 나서려고 로비를 지나갈 때였다. 예상대로라면 바탐방 지역 주민들이 숙소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그들은 호텔 로비에서 자신의 가방에 앉아있거나 심지어 누워있기도 했다. 이상한 생각에 그들에게 다가가 여기서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텔 방 열쇠에 쓰여 있는 호수를 읽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는 호텔방의 번호가 1403호이면 14층에 있는 3호 방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키를 주고 알아서 숙소를 찾아가라고 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순간, 큰 결례를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누구나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실도 작은 것에서부터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소통이 불통으로 바뀌는 것이 순식간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진행요원들과 함께 한 사람씩 숫자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고 그들이 묵을 방을 일일이 안내해주면서 사과를 했던 경험이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거보다도 소통의 깊이나 생각이 나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밤새워 쓴 연애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순간의 두근거림이나 공중전화에서 뒷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엉거주춤 불안한 자세로 나누던 사랑의 속삭임과 같은 진솔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내가 바탐방 지역 주민들에게 실수를 했던 그것,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곧 소통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나 위주로 생각하는 소통, 안하무인격인 소통, 이런 소통들은 소통을 할수록 최악의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를 기본으로 소통을 시작해보자. 그러면 소통이 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이 될 것이다. 통, 통, 통!

이창식 < 동아원 사장 rhecs@kodoc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