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로봇의 진화
두 발로 걷는 최초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은 1973년 일본 와세다대 가토 이치로 교수팀이 개발한 ‘와봇-1(WABOT-1)’이다. 물론 와봇 1은 겨우 몇 걸음 걷는 정도였다고 한다. 본격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탄생은 혼다의 ‘아시모’ 시리즈를 꼽는다. 2000년에 처음 공개된 아시모는 키 120㎝, 무게 50㎏으로 약 30개의 호출신호를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지난해 발표된 아시모는 키 130㎝로 10㎝ 자랐다.

시속 9㎞로 달릴 수도 있고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것도 가능했다. 손가락으로 수화(手話)를 하며 보온병 뚜껑을 열고 컵에 물을 따를 수도 있었다. KAIST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는 아직 시속 3.6㎞로 달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아시모로 인해 일본은 로봇 대국으로 자리잡았다. 휴머노이드에 관한 한 따를 자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로봇이 필요한 곳에 일본 로봇은 없었다.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당장 인간을 대신해 사고 현장에 투입한 로봇은 미국 아이로봇사의 구조용 로봇인 팩봇과 워리어였다. 이 로봇들이 방사선 및 산소 농도를 측정하고 오염 잔해도 말끔히 청소했다.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하는 존재가 로봇”이라는 것이 아이로봇 게리 캐런 사장의 지론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500만대 이상 팔린 청소로봇 룸바도 아이로봇사가 개발한 제품이다.

물론 이런 로봇들은 휴머노이드가 아니다. 아톰과 태권V, 로보캅 등과는 천양지차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고 싶어한다. 로봇 발전도 이런 방향으로 진척될 것이라고 얘기해왔다. 로봇 찬미론자들은 아예 동물처럼 재생산할 수 있는 로봇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봇 시장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다는 것은 철칙이다.

현대중공업이 서울아산병원과 손잡고 차세대 의료용 로봇 개발을 본격화한다는 소식이다. 현대중공업은 자동정형외과 수술 로봇 등 의료용 로봇을 개발한다고 한다. 이미 6축 다관절 로봇을 개발한 현대중공업이다. 아산병원도 2007년 로봇수술센터를 개관한 이후 2800회의 임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로봇 기술을 적용하면 정확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는 등 치료효과가 크게 향상된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이 보다 정교하고 실용적인 로봇을 개발해 세계의료 산업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시너지 효과를 얻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