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다문화 경쟁력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에서 얼마 전 직원 채용을 하는데 선발조건이 예전과 달랐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최고의 명문대학 출신의 백인 미국인을 선발 기준으로 삼았었는데, 이제는 채용공고에서부터 인종에 상관없이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로 규정했다. 국가의 기밀을 다루는 기관에서 외국어의 중요성이 더 부각된 것일까. 아니면 인종의 중요성보다 지역의 다양성이 글로벌시대 정보 확보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이 된 것일까.

미국이나 서유럽을 가보면 유색인종의 비율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뉴욕 맨해튼의 길거리에서나 프랑크푸르트 괴테광장, 파리 상젤리제 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다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미국은 2010년 기준으로 여전히 백인이 72%가 넘는 인구 비율을 가지고 있으나, 중남미에서 이민온 히스패닉의 인구 증가율이 과거 10년간 43%가 넘으면서 미국 내 사회적인 영향력이 한자릿 수 증가율을 보이는 다른 인종들보다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거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도 과거 20여년 전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늦가을,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KCMC)에서 다문화가정 지원행사를 했다. 다문화가정의 편부모 자녀 장학금 지원과 김장 봉사를 했는데, 참으로 놀라운 현실을 알게 됐다.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외국인 수가 100만명을 넘은 것은 오래됐고, 전체 결혼 100건 중 11건이 국제결혼이며, 다문화가정의 이혼 건수도 전체 이혼의 10%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결혼으로 이주해 온 동남아계 외국여성들이 우리보다 더 능숙하게 김치 담그는 모습을 보고, 또 그들의 자녀가 우리의 자녀들과 다름없이 우리 말을 하고, 우리 글을 쓰면서 대한의 자손으로 꿈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우리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 ‘다문화’라는 단어를 써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다문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다른 더 좋은 말은 없을까…. 그리고 이미 수만명이 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능숙하게 할 것이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 단문화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보다 뛰어날 것으로 본다. 즉,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에서의 변화처럼 그들이 우리나라의 경쟁력 확보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성장하게 하려면 지금의 이분법적인 구분보다 다른 차원의 지원이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한국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 때, 다문화라는 틀을 벗고 이제는 우리가 좀 더 같이 잘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행희 <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장 leehh@corni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