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주미 대사가 어제 무역협회 신임 회장에 추대됐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 표명을 한 지 하루 만이니 신속하기도 하다. 그가 사의를 표명한 뒤 청와대 일각에서는 경질이라는 평가와 함께 무협 회장에 내정됐다는 언질이 흘러나왔다.

한 대사의 사퇴 배경이 무엇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도 없고,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궁금한 것은 대통령이 언제부터 무협 회장 자리를 마음대로 주물렀느냐 하는 점이다. 무협은 6만6000여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순수 민간단체다. 정부의 예산 지원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20여명의 회장단은 영문도 모른 채 거수기 역할을 해야 했다.

무협이 출범 초기부터 관 출신 회장을 맞아 정부와 호흡을 맞췄던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이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했을 정도로 정부가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던 시절이다. 그러나 민간 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1991년 박용학 당시 대농 회장이 첫 민간 출신 회장에 올랐고, 그 뒤 15년간 구평회 E1 명예회장,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 등 기업인들이 회장을 맡아 무역업계의 중심 단체로 자리를 잡아왔다. 그러던 회장 자리가 2006년 무슨 이유에선지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넘어갔고,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거쳐, 이번에 한 대사에게까지 흘러가게 됐다. 회장뿐 아니다. 부회장 자리는 애초부터 정부가 놓친 적이 없다.

정부와 할 일이 많아 관 출신 인사가 제격이라는 주장은 마르고 닳도록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싶은 관료들의 주장일 뿐이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코를 베어가는 것이 요즘 수출 전선이다. 현실에 맞는 협회의 기능은 회원사가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에도 회원사들이 정부의 낙하산에 얼마나 반발했던가. 회원사가 회비나 내는 기계 꼴이 됐으니 말이다. 이제 무역협회를 무역인들의 손에 돌려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