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진핑이 각본대로 움직였다고?
“시진핑(習近平)은 쓰여진 원고를 읽고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제프 베이더 전 백악관 안전보장회의 보좌관)

미국을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에 대해 미국에서 실망스런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시 부주석에게 뭘 바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활기차고 대담한 성격이어서 솔직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 것”(워싱턴포스트)이란 기대가 컸었나 보다. 자유롭고 직설적인 발언으로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상상했던 것 같다.

시 부주석은 미국의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 국방부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15일 미국 재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도 그는 원고를 읽기만 했다”고 보도했다. 외교적 수사나 중의적인 어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거나 색깔을 숨기는 기존 중국 지도자들의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모습을 근거로 그가 자신감이 결여됐거나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지도자로 해석한다면 틀렸다. 중국 지도체제의 특성과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접근법일 뿐이다. 중국은 집단지도체제 국가다. 한두 사람이 어떤 정책의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당이나 정부의 정책으로 공식화된다.

이런 점에서 시 부주석의 발언에서 “어떤 중대한 정책적 변화를 읽을 수 없었다”(워싱턴포스트)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시 부주석이 자신의 생각을 독단적으로 밝히는 것은 중국의 지도체제에 비춰볼 때 생각하기 힘들다. “쓰여진 대로 읽었다”고 하지만, 쓰여진 그 말은 여러 사람이 총의를 모아 토론에 토론을 거듭해 만든 것이란 점을 미국 언론들은 간과한 것 같다.

겸손함은 또한 동양의 미덕이다. 과거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며 대화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 언론의 도마에 올랐던 적이 있다. 동양에선 상대방을 존중할 때 그의 눈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상대방의 체면도 존중하는 중국인의 특성상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으며 미국을 방문한 시 부주석이 자극적 언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 언론들은 중국에 대해 좀 더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김태완 베이징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