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분쟁 생기면 외국로펌부터 찾다보니…
외환은행이 2003년 외환카드 주식양수도 계약과 관련해 외국계 펀드사에 변호사 비용으로만 100억원이 넘는 돈을 물어줄 처지에 놓였다. 논란이 됐던 지분 ‘헐값 매각’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국제중재법원이 지난해 말 외환카드 2대주주였던 올림푸스캐피탈 등 6개 펀드사에 외환은행이 6400만달러(718억원)를 물어주라고 판결한 것이다. 펀드사들이 청구한 돈 가운데 20%가량인 1172만달러(131억원)가 미국 ‘모리슨 앤드 포어스터’ 등 외국 로펌을 선임한 데 쓴 비용이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특허소송을 한국 외에 세계 8개국에서 진행하면서 각국마다 현지 로펌 변호사들을 쓰고 있다. 로펌 업계에서는 이번 애플과 소송에서 쓰는 삼성의 변호사 비용이 최대 1000억원을 넘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외국 로펌에 지급하는 돈이 해마다 늘고 있다. 반면 국내 로펌들이 외국 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임료는 이를 못 쫓아가 법률서비스 무역적자가 커지는 추세다.

12일 한국은행 서비스무역 세분류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과 정부 기관 등이 외국 로펌에 지급한 돈은 11억8360만달러로 2010년(10억8360만달러)에 비해 11.6%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국내 로펌이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은 6억8090만달러에 불과해 법률서비스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5억270만달러였다. 적자가 5억달러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외국에서의 특허분쟁, 반덤핑, 불공정거래 등 분쟁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로펌들은 그러나 기업들이 필요 이상 외국 로펌에 의존하는 점도 이유로 꼽는다. 올해부터는 한·미와 한·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과 유럽 로펌이 한국에 진출해 이들의 사건 수임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위원회 사무관 출신인 조영재 국제통상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외국 로펌은 한국 로펌의 7~10배가량 수임료를 요구하지만 실제 성과는 금액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영어로 된 어려운 법률의견서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제대로 검증을 하지 못해 비싼 돈만 지급하곤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해외 사건이라도 최소한 국내 로펌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함께 선임하면 외국 로펌만 썼을 때에 비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국제중재 변호사는 “국제중재의 경우 국내 로펌이 사건을 단독으로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이 성장했는데 기업들은 외국 로펌을 쓰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 기업이 한국에서 진행하는 법률 분쟁에서도 국내 로펌들은 사건을 독점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은 삼성을 상대로 국내에서 벌이는 특허분쟁에서 김앤장 외에 모리슨 앤드 포어스터 등 자국 로펌 2곳을 동시에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로펌들은 비싼 수임료와 늘어나는 사건 수임은 ‘실력의 차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5위권 로펌인 앨런앤드오버리의 변문삼 영국 변호사는 “영국법이 미국법과 함께 ‘국제거래법’이어서 영국 로펌들이 한국 기업과 외국 은행 간 업무를 맡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