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 "이 법 집행하기 곤란" 난색
전문가들 "정부가 가격 정한 사례 없다" 법 폐기 요구

신용카드 수수료율과 관련한 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와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카드 수수료율을 일방적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 시장경제 질서를 해치는 `독소조항'이라는 이유에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0일 통과시킨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에 정부가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개정안 18조의3 제3항은 "신용카드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하의 영세 가맹점에 대해 금융위가 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연매출 2억원 이하 중소가맹점은 대형마트와 비슷하거나 낮은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이는 정부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행정지도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개정안은 금융위가 수수료율을 일방적으로 책정해 업계에 강제 적용토록 했다.

카드사가 수수료율을 지키지 않으면 최악에는 영업정지나 허가등록 취소 처분을 받는다.

금융위 관계자는 "어느 법을 뒤져봐도 정부가 가격(수수료율)을 정하게 한 사례는 없다"며 "시장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다른 가격 결정에도 정부가 개입하게 되는 선례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본시장법에서 펀드판매 수수료율 상한선을 정하는 등 가격에 제한을 둔 예는 있지만 가격 자체는 제한된 범위에서 모두 시장 자율로 정해진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순섭 교수는 "정부가 가격을 정하거나 가격결정에 개입하려면 독ㆍ과점 피해 예방이나 보조금 제공 등 공익적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카드 수수료율은 이런 배경이 없다"며 "시장경제의 본질을 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김앤장은 개정안과 관련한 KB국민카드의 법률검토 의뢰에 "(정부가 수수료율을 정해) 획일적 평등을 요구하는 것 자체로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정한 `수단의 적정성'을 위배했다"고 회신했다.

특히 "수수료율을 특정해 자율적인 가격 결정을 금지하는 건 행복추구권, 재산권, 직업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도 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위헌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정된 법을 집행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위는 이날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정부가 민간 기업의 가격을 규제하면 헌법 제15조에 규정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이에 따른 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매년 모든 카드사의 원가를 분석해 수수료율을 제시하라는 법은 집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지난 10일 정무위에서 "모든 가맹점이 수용할 수 있는 수수료율을 금융위가 산출하라는 법은 사실상 집행하기 곤란하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 처리에 앞서 정무위는 금융위가 아예 `기준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엄연히 `사적 계약'의 결과인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도록 한 개정안을 당장 폐기하거나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양대 경제학부 하준경 교수는 "정부더러 일률적인 가격을 민간회사에 내려보내라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 때도 드물었다"며 "정말 해도 너무한다"고 비판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을 그대로 적용하면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업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홍정규 기자 koman@yna.co.kr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