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농촌 세계화 '전통' 담아야
대전에서 4년 동안 살면서 주변 전경의 아름다움은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의 오래된 농촌 가옥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워서 내가 유럽에서 어렸을 적 봤던 농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럽의 토스카나 지방이나 프로방스 지방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와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고 농촌마을에서 생산된 상품을 사기도 하는 그런 평화로운 마을의 이미지다. 그러나 실제로 대전 근처 시골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오래된 농촌 가옥을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할 보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퇴행적 시대의 잔재로 간주할 뿐이다.

물론 예외적인 시도, 예를 들어 유기농 마을을 건설해 사람들이 ‘느린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농촌 지역 개발에 관한 세심한 규칙을 만들어서 매력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조그만 지방의 관광산업 진흥에 성공한 배경에는 바로 그런 세심한 전략이 깔려 있었다.

다음 단계는 지역의 특별한 자랑거리와 독특한 역사를 재발견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프로방스에 있는 모든 마을은 각각의 풍부한 역사를 담은 독특한 방패형 문장(紋章)이나 상징물이 그려진 깃발을 갖고 있다. 성곽이나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은 티셔츠나 자동차 스티커, 또는 커피잔이나 핀 등에 자랑스럽게 새겨져 홍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한국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면 그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다.

대전시를 예로 들어보자. 오늘날 대전은 기본적으로 과학의 본산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러나 대전에는 다른 요소도 존재한다. 바로 대전의 오래된 역사와 고유의 생태 체계다. 고대 시기로부터 대전을 둘러싼 산에는 특이하게 많은 산성이 축조돼 있는데 지금까지 40개 이상 산성의 축성 배경이 파악되고 있다. 이들 성곽은 대전의 관광 진흥이라는 차원에서 금광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방치된 상태에 놓여있다. 만약 이들 성곽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문장을 도안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동차에 부착된 스티커나 깃발처럼 자랑스럽게 홍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이 성곽들은 대전 문화의 중심 소재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적오산성(赤烏山城)에 적합한 휘장을 하나 만들어 본다면 붉은 까마귀 산이라고 하는 그 이름의 의미와 산성의 존재에 주목해 산성과 전통한옥, 그리고 붉은 까마귀의 형상을 조합한 문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의 농촌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조치로는 지역의 생산품을 묶어서 패키지 관광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막걸리와 된장, 고추장, 두부, 참기름을 최상급 제조 기준에 적합하게 생산해서 최고급 음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독특한 제조법이 강조돼야 한다. 된장을 예쁜 도자기에 넣고 어느 옛날부터 비법으로 만들고 있다고 해외로 홍보를 잘하면 하나에 40만원에도 팔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화적 연속성은 한국 농촌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한국이 1960년대 이후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지를 강조할 뿐, 1000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된장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외면해 왔다. 한국을 세계에 매력적인 나라로 광고하고 싶다면 경제적 기적을 이룬 나라로 인식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주 다양한 생산품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얼마나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농촌의 멋진 생활을 선전하면서 거둔 성공에 주의한다면 아시아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만열 <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 epastreich@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