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의 동화같은 '순애보'…아역연기 돋보여
병약해진 왕 훤(김수현)과 그를 치유하기 위해 입궐한 액받이 무녀 월(한가인)이 애틋하게 재회한다. 그들은 원래 혼인할 사이였지만 대비의 간계로 8년이나 헤어져야 했다. 월은 연우란 이름의 양반댁 규수였지만 기억을 잃고 천한 신분의 무녀가 됐다.

훤은 월을 보고 연우를 떠올린다. 그녀가 쓴 글씨체도 어린 연우가 쓴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월은 스스로 연우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훤은 극심한 갈등으로 월을 내쳤다가 다시 부른다. 월의 토막난 기억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녀는 언제쯤 기억을 되찾고 잃었던 사랑을 찾을까.

지난 2일 방영된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극본 진수완, 연출 김도훈, 제작 팬엔터테인먼트, 이하 ‘해품달’)의 수도권 시청률이 40.5%를 기록했다. MBC 드라마가 시청률 40%를 넘어선 것은 ‘선덕여왕’ 이후 3년 만이다. 정은궐 씨의 동명 원작 소설은 3주 연속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2위보다 2배 가까이 판매량이 많다. 30만권이 넘게 팔렸다.

‘해품달’의 배경은 조선시대지만, 가상의 왕을 내세운 첫 창작 사극이다. 궁중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강렬한 판타지로 그려낸다. 어린 연우와 훤의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서로 껴안고 땅에 떨어지는 장면은 꽃잎들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영상미를 빚어냈다.

기품 있는 어린이들이 품격 높은 대사를 나누는 모습은 요즘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여기에 첫사랑에 대한 왕세자의 순애보는 잃어버린 순수와 동화 같은 세상으로 여성 시청자들을 데려간다. 보다 현실적인 사랑을 다룬 같은 시간대 KBS2TV ‘난폭한 로맨스’의 시청률이 4%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감초 같은 조연들은 웃음을 준다. 공주는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으면 ‘엉엉’ 운다. 자신을 골탕먹인 오빠의 신발을 지붕 위에 던지는 말괄량이기도 하다. 기존의 공주와 다른 모습이다. 공주의 오빠 양명군도 장난기 많은 방랑자다.

인터넷에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양명을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상처만 가득한 양명의 앞날이 걱정이다.” “왕실의 암투가 주를 이루던 사극 패턴에서 벗어나 감성적인 멜로라인이 너무 가슴 아프다.” “오랜만에 가식적이지 않고 진심으로 뭉클한 드라마를 본다.”

해품달처럼 사극이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투영하는 무대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원수지간인 수양대군 딸과 김종서 아들의 사랑을 그린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공주의 남자’가 인기를 끌었다. 한글창제를 소재로 다룬 ‘뿌리깊은 나무’는 강채윤과 소이의 러브스토리와 왕과 백성 간의 소통을 강조한 정치드라마를 결합했다. 이들 세 드라마는 사극이란 형태만 빌렸지 사실상 현대극이다.

방송가에서는 40%대 시청률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복고풍이나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트렌디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MBC 관계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면서 어른들도 함께 보고 있다”며 “초반부 아역들의 연기가 기대를 훌쩍 넘어선 게 컸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