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성의 주차능력
‘금발 여성의 주차.’ 지난해 6월 인터넷을 달군 해외 영상 중 하나다. 자동차 한 대가 쇠줄로 된 중앙 분리대 위에 걸터앉은 듯 놓인 것으로 러시아에서 촬영된 교통사고 사진이라고 했다. 신기해서 올렸겠지만 제목에선 왠지 여성의 운전 솜씨를 비아냥거린 듯한 냄새가 난다.

여성은 언어력, 남성은 공간지각력에서 우세하다는 게 그간의 통설이었다. 여성이 운전, 특히 주차를 잘 못하고 남성이 여성과의 말싸움에서 이기기 힘든 것도 그런 차이 탓으로 여겨져 왔다. ‘남성은 말을 듣지 않고, 여성은 지도를 못읽는다’는 얘기가 나온 맥락도 같다.

남녀 차이에 대해선 ‘진화의 산물’이란 해석이 주류다. 오랜 세월 남성은 사냥하러 돌아다니고, 여성은 동굴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호르몬 때문이란 설도 제기됐다. 남성은 짝을 찾느라 공격성을 유발하는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증가한 반면, 여성은 임신 및 출산 때 조심하도록 줄어들었다는 견해다.

어느 쪽이든 뇌 구조와 상관있다고 한다. 남성은 좌·우뇌가 분리된 반면 여성은 연결돼 있어 그렇다는 말이다. 싸울 때 여성은 ‘끝장을 보자’고 하는 반면, 남성은 ‘나중에’라며 미루는 것도 여성은 화가 날수록 뇌 속의 언어 및 사고 회로가 열리는 반면 남성은 닫히는 결과란 마당이다.

남자가 회의 중 다리를 떨거나 볼펜을 돌리는 것도 처리 가능한 어휘가 적다 보니 수시로 쉬려 드는 뇌를 각성시키려는 무의식적 반응이라고 할 정도다. ‘브레인 섹스’의 저자인 앤 무어는 이런 차이가 임신 6~7주면 시작된다며, 다른 호르몬이 다른 뇌를 만들고 다른 뇌가 다른 사고 및 행동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어떤 통념도 뒤집히기 일쑤. 여성의 주차능력이 남성보다 뒤지긴커녕 더 낫다는 발표가 나왔다. 영국 주차업체 NCP의 조사에서 남성은 20점 만점에 12.3점, 여성은 13.4점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반화엔 무리가 있다지만 여성의 공간지각력 부족론은 타격을 입게 생겼다.

남녀 차이가 태생적인 것이란 주장에 대한 반론은 적지 않다. 인지력, 공격성, 리더십, 자신감, 판단력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는 재닛 하이드 교수(미국 위스콘신대)의 보고도 있다. 뇌 구조를 빌려 차이를 기정사실화하는 건 생로병사 일체가 DNA에 그려져 있다는 식의 예정론과 다를 바 없다. 쌍둥이의 성격도 각각이다. 차이를 무시해도 안되겠지만 지나치게 강조, 서로를 틀에 가두지 말 일이다. 피차 힘들고 불편해진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