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기업가 정신을 고양해 울산을 세계에서 우뚝 선 친환경 산업수도로 만들고, 모든 시민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지는 정의로운 문화 복지도시로 만든다.”

지난달 27일 울산시 신정동 공업탑. 박맹우 울산시장은 기업인과 울산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공업센터 지정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울산도약 제2선언문’을 공포했다.

박 시장은 ‘새로운 100년, 영광을 위하여’라는 부제의 제2선언문에서 “울산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조국 근대화의 메카 역할을 다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견인했다”고 평가했다.

○울산 공업화는 근대화 과정

제2선언문비(가로 330㎝, 세로 50㎝, 높이 270㎝)는 울산 공업화의 상징인 공업탑 바로 앞에 세워졌다. 공업탑에는 50년 전 바로 이날 울산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공단인 울산공업센터로 지정하고 같은 해 2월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사문이 부착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울산 남구의 조용한 어촌마을인 매암동 납도마을(지금의 효성 울산공장 동쪽 언덕)에서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 울산을 찾아 산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라며 공업화의 역사적 개막을 알렸다.

○산업성지로 상전벽해

50년이 지난 울산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산업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도시로 광공업 생산액이 전국의 13.6%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제1의 산업도시로 상전벽해(桑田碧海)했다. 50년 전 생산공장이라고는 젤리 등의 소재인 한천(寒天)을 만드는 삼양사 공장 하나밖에 없던 울산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에쓰오일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이 몰려 있는 산업 메카로 발전했다.

공업화 초기 8만5000여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현재 114만여명으로 13배나 불어났다. 1인당 지역 총생산(GRDP)은 5400만원으로 서울(2737만원)의 2배 가까운 수준에 달하는 등 국내 제1부자도시로 변모했다.

1962년 어육(漁肉), 한천, 고래고기 등을 팔아 26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렸던 울산은 지난해 대망의 수출 1000억달러를 달성, 국내 제1의 수출산업도시로 우뚝 섰다. 이는 인구 110만명의 도시로는 세계 산업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급속한 공업화 덕분에 울산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연봉 6000만~7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을 올리며 화이트칼라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는 ‘네오 블루칼라(Neo Blue-collar)’ 계층으로 자리잡았다.

○근대화 1세대 기업가들의 성지

울산의 고도성장은 박 전 대통령의 강도 높은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함께 기업인들의 모험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울산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고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 고 이정림 대한유화 명예회장 등 창업 1세대 기업가들의 모험과 도전이 깊숙이 스며있는 ‘기업가 정신’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울산공업센터 지정도 기업인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당시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전신) 회장을 맡고 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기업인들과 공동으로 ‘종합 중공업 지대 창설에 대한 건의서’를 박 전 대통령에게 제시하며 울산 공업특구 지정을 강력히 촉구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보다 10년 앞서 울산에 우리나라 최초의 생산공장인 제당공장을 지은 삼양사 창업주인 수당 김연수의 기업가적인 안목도 큰 힘이 됐다.

고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남긴 족적은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건설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1971년 9월 울산 조선소(현재의 현대중공업 전신) 건설 자금 유치를 위해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 조선소 부지인 백사장 사진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정 회장은 바클레이즈은행 롱바톰 회장에게 500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빨리 이런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 지금의 세계 1위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을 만드는 기틀을 다졌다. 정 회장의 혼이 담긴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변신했다.

정 회장의 ‘현대정신’이 오늘의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일궜다면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울산에 정유화학 산업을 세계적인 메카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효성그룹은 1966년 만우 조홍제 창업주가 울산에 세운 동양나이론이 시발점이다.

조재호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펴낸 ‘한국의 경제발전과 기업가 정신’이란 책에서 “기업가 정신이란 불확실한 상황에 도전하며 남보다 한발 앞서서 이윤 창출의 기회를 감지하고 새로운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를 하는 순발력과 추진력이 갖춰진 정신”이라고 규정했다.

○그린 스마트 혁명으로 새로운 100년 준비

[울산 공업화 50년] '산업 聖地' 우뚝 선 울산, 그린 스마트 도시로 새로운 100년 향해 뛴다
울산은 역사적인 공업센터 지정 50년 만에 이뤄진 자동차 석유화학산업 부문 전국 1위, 조선해양 세계 1위의 저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 단초를 한국 산업화의 모델 울산을 세계적인 산업성지화하는 데서 찾고 있다.

신동길 울산시 기획관은 “울산의 산업화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 여기에 시민들의 기업 프렌들리가 융화합해 이뤄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걸작품”이라며 “울산 발전사는 경기 침체로 희망을 잃고 있는 세계 각국에 경제부흥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시는 이를 위해 50년 산업사의 발자취를 다양한 각도로 연구하는 문헌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울산 산업 경쟁력의 핵심 원동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심층 연구해 미래 100년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역사적인 산업단지 기공식 현장에서 기공식 비문이 새겨져 있는 울산 공업탑,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SK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한 울산 산업시설을 산업성지 관광 견학 코스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선보이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