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듣는 방법을 배워라
나를 포함한 우리 회사의 임원들은 정기적으로 콜센터에서 직접 고객들의 전화응대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고객의 불편한 점을 직접 듣고, 고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30년 넘게 일을 해온 나로서는 누구와 이야기할 때 긴장할 만한 경우는 드문데, 이때만큼은 전화기를 쥐는 손에 땀이 난다. 고객들의 얘기를 ‘더 잘 듣기’ 위해서다.

우리는 스티브 잡스처럼 누구보다 훌륭하게 자신의 의사를 남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사람, 즉 ‘커뮤니케이터’들에게 열광한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의 ‘나누다’를 의미하는 ‘communicare’이다.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서로 간의 생각이나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완성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만 기억하고 그들을 닮고 싶어하는 반면, 듣는 사람의 자세와 자질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 그들과 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다. 성공을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주변의 동료나 후배들과 멀어지는 것 같고 일의 협조도 예전처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듣는 입장이 아니라 말하는 입장이 돼 있지는 않은가’하고 자문을 해본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노력해 온 것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기 주장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 경쟁하면서 의견을 피력하고 상대방을 설득시킴으로써 성과를 이루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된다는 것 자체를 자신의 무능력과 동일시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여러 가지 입장이 생겨나게 되고, 반드시 하나의 의견이 옳은 경우는 드물다. 모두가 선택돼야 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를 들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말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듣는 것은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하는 것은 훈련이나 지속적인 교육으로 그 자질을 키울 수 있지만 듣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섬김 등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 하겠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의미의 이청득심(以聽得心)이 리더들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귀와 머리가 아닌 가슴과 심장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자세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동 사회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모두 새해부터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손병옥 < 푸르덴셜생명 대표 bosohn@prudentia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