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류전원 마을' 만들면 최악의 블랙아웃 막는다
‘전기 박사’ 김석환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48)은 최근 전기와 관련한 특이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모든 전기를 직류로 쓰는 마을을 짓는 프로젝트다. 그는 중소기업 퇴직자 등과 함께 경남 거창군의 한 마을에서 이를 추진 중이다. 김 연구원은 “원전 추가 건설로 전력 공급을 계속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전력을 자체 충당하고 저장할 수 있는 구조물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의 발상은 최근 수요가 계속 늘면서 예비전력난에 시달리는 국내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내 전력시스템은 220~240V, 주파수 60㎐에 맞춰져 있다. 또 교류 방식으로 전국(제주도 제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특히 적은 전선으로 많은 전기를 보내는 ‘3상 교류’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얽히고 설킨 전선 구조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구조 탓에 한 발전소가 멈춰서면 다른 발전소에 평소와 다른 큰 부하가 걸린다. 이 부하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발전기에 부담을 준다. 즉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국이 암흑천지(블랙아웃)가 될 수 있다. 2003년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에서 발생해 약 60억달러의 피해를 낸 사상 최악의 정전은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전기는 실질적으로 저장할 수 없고, 사용하는 만큼 그때마다 발전해야 한다. 예비전력을 아무리 많이 구비해도 탈조(부담이 간 발전기가 멈추는 일)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 속수무책인 이유다. 축전지, 양수발전 등 저장 수단이 있긴 하지만 용도는 극히 제한적이다. 고육지책으로 원전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내 현실도 이 때문이다. 2030년까지 원전 11기를 더 건설하면 국내 발전량의 59%(3336억㎾h)를 원전이 담당한다. 김 연구원은 “원전 확대에 따른 폐기물 처리 문제가 상당한 재앙으로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구상하는 ‘직류 전원 집’ 밖에는 발전소·변전소를 거쳐 나오는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변환기가 있다. 또 태양광 패널 등을 통해 직류로 들어오는 태양광 에너지를 교류 변환 과정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전기 저장소(배터리)로는 매설이 용이한 납 축전지를 쓴다. 이 납 축전지는 정전시에 대비한 UPS(uninterruptible power supply·교류를 직류로 바꿔 보관하고 비상시 직류를 교류로 바꿔 내보냄)를 대신할 수 있다.

그는 PC 오디오 냉장고 TV 조명 등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보통 교류에 맞춰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설계한 세탁기와 에어컨 등이다. 소규모 발전소 확보 가능성도 미지수다. 풍력 태양광 등으로는 아직 기저전력(생활에 필요한 근간이 되는 전력)을 생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 스웨덴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