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뒤처질 것 같아 늘 긴장…더 멀리 더 깊이 미래 봐야"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일본은 너무 앞선 나라였기 때문에 (지금은) 힘이 좀 빠진 것 같고 중국은 젊은 나라이고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아직 쫓아오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가전 전시회 ‘CES 2012’를 참관한 자리에서 ‘일본과 중국 기업을 평가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회장은 하지만 “우리가 몇몇 앞서가는 게 있지만 이런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깊이, 더 넓게 가져가야 되겠다”며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질 것”이라고 긴장감을 주문했다.

삼성에서는 “확실히 자신감이 붙었지만 긴장감과 경각심도 더 커진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평소 이 회장은 “위기는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할 때 찾아온다”고 말해왔다. 이날 언급도 ‘삼성전자가 글로벌 1등 정보기술(IT) 기업에 오른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10년 후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채찍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선 것도 몇 개 있다”

이건희 "뒤처질 것 같아 늘 긴장…더 멀리 더 깊이 미래 봐야"
이 회장의 이날 행보는 과거와는 조금 달랐다.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가 삼성 전시관에서 처음 들른 곳은 삼성전자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55인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와 75인치 LED(발광다이오드) TV 앞. 이 회장은 OLED TV가 만족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LED TV에 대해서는 “색깔이 좋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TV 카메라로 사람 동작과 음성을 인식할 수 있어 시연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40분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설명하자 “아 그래?”라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의 S펜으로 그린 캐리커처를 보고는 “정말 그림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0년 CES 때만 해도 “LED TV 테두리가 날카롭게 각져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느냐”거나 “e북 리더기의 글씨가 너무 두껍게 쓰인다”며 개선을 지시했지만 올해는 별다른 지적이 없었다.

최 부회장은 “아무 말씀 안 하시면 칭찬으로 받아들여야죠”라고 전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정신 안 차리면 금방 뒤진다”

이 회장은 그러나 자만은 절대 금물이라는 점을 거듭 밝혔다.

라스베이거스 현지에서 가진 사장단 미팅에서 그는 “사업의 기본이 미래를 내다보고 기술을 개발하고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만 이제 이 정도 가지고 안되겠다”며 “더 깊이 미래를 직시하고, 더 멀리 보고, 기술을 더 완벽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사장단에 주문했다.

이 회장은 “기본적으로 TV와 갤럭시폰이라든지 (내세울 것이) 몇몇 개 있지만 이런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다양한 부분에서 더 깊이, 더 넓게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몇 년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긴장된다”며 “미래에 대해 충실하게 생각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해 힘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용 삼성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10년 후를 대비하기 위해 이 회장이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녀들 더 공부해야

이 회장은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이부진 삼성에버랜드·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부사장 등 세 자녀와 함께 움직였다. 시종일관 이부진 사장과 이 부사장의 손을 꼭 붙잡고 전시장을 둘러봤다.

하지만 세 자녀의 역할 확대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이 회장은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하는 것 보고 (결정)해야 한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CES에서도 “자녀들이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고 했다.

삼성 안팎에선 지금 후계 승계를 거론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얘기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라스베이거스=정인설/조귀동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