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회 성황..판매수익 소년소녀 가장 돕기로

'애인과 헤어졌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선물들을 어떻게 할까…'

유학 중인 오보배(30.여)씨는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가 5년간 사귄 옛 애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방구석에 쌓여있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고민을 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 같다고 생각한 오씨는 전시기획 일을 하는 친구와 함께 이색 행사를 열기로 했다.

이른바 '옛 애인 선물바자(Give Your Old Gifts)'.

오씨 등은 사람들이 옛 애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기증받아 판매해 수익금 전액으로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행사를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재미공작소에서 열었다.

20평 남짓한 행사장은 바자회가 시작되고 얼마 안돼 40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곧 시끌벅적해졌다.

손님은 20~30대 남녀가 대부분이었지만 중·장년층과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테이블에 올려진 반지, 향수, 목걸이, 신발, 인형, 넥타이, 수제비누, 연필세트, 와인잔 등을 구경했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집어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각각의 물건 옆엔 기부 사연이 적힌 꼬리표가 놓였다.

한 보랏빛 액세서리엔 '대학교 때 만났던 남자친구가 생일 선물로 사준 펜던트입니다.그 사람은 제가 여성스럽고 숙녀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그런데 전 여전히 그런 스타일이 아니네요'라는 설명이 있었다.

기부할 물품이 없는 사람은 재능을 기부했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34)씨는 기타를 들고와 미니콘서트를 열었고, 남지우(24·여)씨는 행사장 한쪽에 네일아트 코너를 마련했다.

행사를 기획한 김선경(30.여)씨는 "단순 바자나 전시회는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회 기부와 관련된 전시기획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행사를 처음 제안한 오보배씨는 "수익금으로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이유는 사랑으로 한 단계 성숙한 언니ㆍ오빠ㆍ형ㆍ누나가 때 이른 성장통을 겪는 동생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오씨는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연애를 한 사람들의 트렌드를 물품으로 나열해 보여주는 전시회 성격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바자회에서 목도리와 인형 등을 산 회사원 김종훈(33)씨는 "물건의 질은 기대하지 않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괜찮고 가격도 싸서 만족스럽다"며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물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최윤희(24·여)씨는 "다른 바자회 물품은 누가 어떻게 썼는지 몰라 애정이 덜할 수 있지만 애틋한 사연을 가진 물건들은 그만큼 더 소중히 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오늘 행사장에서 물건 구입 뿐 아니라 기부가 가능한 걸 알았다면 나도 헤어진 남자친구가 준 선물을 몇개 가져올 걸 그랬다"며 웃었다.

이날 수익금은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 시민연합에 전달된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홍국기 기자 ksw08@yna.co.krredfla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