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눔은 채움이다
지난 세밑 화려한 조명, 북적이는 사람들, ‘딸랑딸랑’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시내가 이젠 새해라서 그런지 차분해진 느낌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많은 이웃들이 겨울에만 어려움에 처하는 것도 아닐 터인데 기부가 연말에만 집중되는 것이 안타깝다. 오죽했으면 연말을 ‘기부 성수기’라고까지 할까.

20여년 전 미국에서 거주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자원봉사를 할 기회가 없었는데 미국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거나 국제모임에 나가 자원봉사를 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 인종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수년간 가르쳐 온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처럼 진심으로 도와주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여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고 많은 기업이 다양한 기부와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서로를 돕는 제도에서 시작된 보험업이어서 그런지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이고 항상 사람을 향해야만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찍이 다양한 사업을 해오고 있다. 필자는 매년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중 희귀암으로 투병 중이던 여학생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외교관이 꿈인 그 학생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무총장을 병상으로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으며, 혹여 바쁜 총장께서 시간을 내주신다고 한들 투병 중인 여학생이 미국을 방문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반기문 총장 내외분께서 이런 소원을 가진 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휴가차 한국에 들어왔을 때 직접 병문안을 와 학생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선물할 수 있었다. 비록 물질적인 도움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보여준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그 여학생은 외교부 초청으로 강연을 했고 자신의 꿈을 위한 의지를 다지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필자도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나눔’은 곧 ‘채움’이다. 나눔 활동을 하고 나면 알 수 없는 따뜻한 것이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느낌은 개개인의 생각과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을 바꾸기도 하며, 이런 행동은 생활 곳곳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나눔의 힘이다. 작은 관심이 전체 사회의 기부문화를 바꿀 수 있듯 우리나라도 기부 선진국으로의 힘찬 ‘나눔의 나비효과’를 기대해 본다.

손병옥 < 푸르덴셜생명 대표 bosohn@prudentia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