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배움과 가르침
선생님의 역할은 참 중요하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제자의 인생이 달라진다. 많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지만 특히 기억나는 두 분이 계시다.

전수복 선생님한테서 중1 때 영어를 처음 배웠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신이 나 더욱 열심히 하게 됐고, 이것이 평생 이어져 국제거래 업무에 종사하는 필자의 의뢰인 중 영국과 미국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런던과 뉴욕을 자주 방문하고 많은 영국변호사들이 필자를 방문한다. 사법시험에 실패했을 때 미국유학으로 활로를 개척한 것은 고(故) 최종현 회장님의 한국고등교육재단 덕분이었는데 20 대 1 경쟁의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도 타임지를 틈틈이 읽어둔 덕분이다. 전 선생님께서는 안동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이 좋은 나머지 교회에 처음 가게 됐고 지금까지 꾸준히 신앙을 가지는 동기가 됐다.

고1 때 임현진 미술선생님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은 전시회에 자주 갈 것을 권장했고 이에 감화받아 광화문과 인사동 화랑가를 자주 방문했다. 그때 인상 깊었던 작가가 물방울 화가 김창렬 화백과 문신 조각가다. 두 분 모두 우리나라 대표 작가가 되셨지만 필자가 1970년대 초반부터 그분들의 작품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아마 모르실 거다. 대학 시절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명화 화집을 탐독했다. 세잔과 고흐가 특히 좋았는데, 파리 오르세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보고 싶던 인상파 그림이 꽉 차있는 것을 보고 숨이 막힐 만큼 기뻤다.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스페인 국민화가 고야의 애국적인 ‘1808년 5월3일’과 풍자적인 ‘검은 그림’들을 보고 영혼을 울리는 듯한 깊은 감동을 받았다. 평생 영어와 미술에 친숙하게 만들어주신 두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다가 3년간 사법연수원 외래교수를 맡았다. 이 나라 법조를 이끌어갈 준재를 많이 만났고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열심히 해주었다. 과중한 학업과 비인간적인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제자들과 술잔도 자주 기울였다. 젊은 영재들과의 대화에서 나 스스로 많이 배웠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오로지 자신의 학업에만 몰두하는 개인주의 성향 인재보다는 학우를 위해 희생하고 다른 사람의 사정도 챙기는 넉넉한 마음의 제자가 아무래도 더 사랑스럽다. 강의 과목의 10%는 교수 재량 평가점수인데 필자는 봉사정신이 강한 제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곤 했다. 아직 실패의 경험이 많지 않은 총명한 제자들이 살아가면서 가난하고 힘 없는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도 헤아리는 성숙한 지혜를 스스로 깨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알던 아름다운 제자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같은 자세로 이 나라를 보다 훈훈하고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어주리라 기대한다.

김현 <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hyunkim@sechang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