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대니얼 크레이그) 기자가 연쇄살인범과 마주친 장소는 이 영화에서 가장 깔끔하고 세련된 곳이다. 미카엘이 묵고 있는 허름한 숙소와는 정반대다. 살인자가 사는 곳은 인테리어가 멋진 고급 주택이다. 살인이 자행되고 사체들이 처리된 밀실은 첨단 연구소 같다.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끝까지 살육의 장면들을 포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관객들의 상상만으로도 연쇄살인은 충분히 느껴진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고전적인 스릴러 전략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미카엘 기자와 천재 해커 리스베트(루니 마라)가 추적 중인 연쇄살인 사건은 관객들에게 시종 긴장감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성공했다. 여기에 고상한 사람들이 가진 추잡한 인간 본성을 끄집어낸다. 핀처 감독이 진짜 보여주려 했던 것들이다.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 속에 내재된 악마성이다.

그동안 영화 속 연쇄살인이 더럽고 추한 공간에서 자행됐던 것과 다르다. 스웨덴의 대기업 방예르 그룹의 일가가 모여 사는 부촌이 살인의 배경이다. 그룹 오너가 40년 전 실종된 손녀에 대한 수사를 미카엘 기자에게 맡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카엘 기자와 리스베트는 사건을 맡기 전 개인적으로 고상한 사람들에게서 곤욕을 치렀다. 미카엘 기자는 재벌의 부패를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가 증거 부족으로 역소송을 당했다. 정신병력이 있는 리스베트는 자신을 보호관찰하는 후견인에게 강간을 당했다. 상류층의 이런 악행의 정점에 실종 손녀와 연쇄살인 행각이 놓여 있다. 사건이 해결될 즈음, 절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일상의 폭력을 고발해온 스웨덴 기자 스티그 라르손(1954~2004년)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 3부가 원작이다. 12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