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대표적인 역외 탈세범으로 지목해 1600억원의 세금을 부과하려던 ‘구리왕’ 차용규 씨가 세금을 내지 않게 됐다는 소식이다. 세금 고지 전 불복 절차인 과세적부심사에서 과세가 부당하다는 차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적부심은 “국내 거주 기간이 1년 중 한 달에 불과한 차씨를 국내 거주자로 볼 수 없어 과세가 곤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거소를 둔 개인’이다. 이에따라 국세청이 새로운 과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차씨에 대한 과세는 사실상 불가하다.

이번 일은 세무조사와 탈세, 위법과 탈법 등 세금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사실상 국경이 무의미해진 만큼 앞으로 이와 유사한 역외탈세 사례는 무수히 생긴다고 봐야한다. 국세청이 41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한 시도상선 권혁 회장 역시 비슷한 케이스다. 지금까지 국제조세 분야의 주된 관심사는 외국 법인들의 이전가격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개인 차원의 역외탈세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이 유념할 부분은 차씨나 권 회장 모두 철저하게 세금문제에 대비해왔다는 점이다. 이들은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 전문가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법망을 피해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치밀하게 연구해왔다. 이는 앞으로 국세청이 유사한 케이스에서 세금을 추징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더욱이 세계 도처에 조세피난처가 생기고 있고 낮은 세율로 기업을 유인하는 국가도 점점 많아지는 게 요즘 추세다. 국경을 넘나들며 교묘하게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길도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일단 세금을 때리고 보자’는 식은 이제 통하기 어렵다. 계획된 역외 탈세에는 사실 뾰족한 대책도 없다. 관련 국내법이나 조세조약 등을 손보고 국제공조를 강화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돈은 세금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증세 열풍에 휩싸여 있는 한국의 정치권과 정부가 참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