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당의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외연을 확대해 올 대선에서 집권하려면 보수라는 표현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나 진보라는 표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어서 보수가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에 포함돼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생뚱맞다. 그러나 보수를 우익과 동일한 개념으로 본다면 한나라당은 한마디로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우익 좌익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이고, 그 이념을 구현한 것이 자본주의요 시장경제 체제다.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바로 우익이다. 우익이야말로 해방 이후 혼란기에 한국 사회의 틀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한국을 민주시장경제의 성공 국가로 발전시킨 우리 사회의 정통성을 지닌 이념이다. 한나라당이 이런 고귀한 이념을 부정하고, 보수를 마치 변화를 반대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수구 이념과 계층으로 취급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좌익 대중민주주의의 확산은 본질적으로 질서정연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우익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인터넷 공간에선 우익이 시대 착오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중산층마저 시장가치에 의문을 표시한다. 당장 권력이 좌익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하니, 포퓰리즘 정책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당으로서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념 없는 실용주의를 앞세워 좌파 정당과 포퓰리즘 경쟁에 몰두하더니 결국 실패로 정권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명박 정부는 이념의 실패가 아닌, 무이념의 실패이고, 우익이 아닌 대표적 포퓰리즘 정부였다.

한나라당의 잘못은 우익을 표명하면서도 제대로 된 우파 정치를 한 번도 펼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코 자유와 시장의 이념 탓이 아니다. 그런데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헌신짝처럼 이념을 내던지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요 자살 행위다.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해 보이면 깨끗이 포기하라. 당장의 선거에 집착해 정당의 이념을 버리는 것은 정당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못할 바에는 차라리 당의 간판을 내리는 것이 낫다.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더이상 욕보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