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배추 사무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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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우 생활경제부 기자 tardis@hankyung.com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물가상승률 목표를 ‘3%대’로 제시하고, 담당 공무원이 이름을 걸고 품목별 물가를 관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에 식품업계는 당혹스러워했다. 한 식품업체 대표는 4일 “올해 국내에서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는 것은 관둬야겠다”고 털어놨다. 1980년대 경제기획원 시절의 ‘배추 사무관’, ‘쇠고기 과장’ 제도가 부활한다는 소식에 네티즌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서민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물가책임실명제’가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환율, 금리 같은 거시정책을 통해 경제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급한 불부터 끄고 보는 임시방편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한 물가관리 정책은 길게 보면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 압박 탓에 가격을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한 회사들도 나름의 절박한 사정이 있고, 인상 억제로 인해 또 다른 부작용이 초래되는 탓이다. 한 포장김치 업체는 지난해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내 최근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한 설탕업체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누적적자 때문에 담당 임원이 교체됐다. 어느 두부회사는 가격 인상이 1년간 좌절되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영업이익이 거의 ‘제로’가 됐다.
2010년 포기당 1만원을 넘었다가 작년 말엔 20분의 1로 폭락,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는 지경이 됐던 배추도 근시안적 물가정책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부는 당시 중국에서 값싼 배추를 대거 들여왔고, 농가에는 재배면적을 늘리라고 주문했다. 이후 가격 폭락으로 농민과 중도매상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하느라 추가 예산을 짜야 했다.
밀가루, 설탕, 라면처럼 국제 곡물값 상승에도 가격을 못 올리고 있는 품목들도 향후 장바구니 물가의 ‘시한폭탄’이 될 게 뻔하다. 언젠간 올려야 하는 탓이다. 짧아도 1년, 길면 2~3년 동안 억눌린 가격인상이 이 정권 말기나 다음 정권 초기에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서민들의 부담만 가중될 따름이다.
임현우 생활경제부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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