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사실상 석유 금수조치를 담은 강력한 대(對) 이란 제재를 현실화하자 이란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란은 1일 핵연료봉 생산 사실을 처음으로 발표하고 중거리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란 ‘일보 후퇴 이보 전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이란 제재 조항을 포함한 국방수권법안에 서명했다. 이 조항은 이란의 핵개발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6개월 후 발효된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라도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나라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실상 석유 금수조치인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 직후 이란은 원유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는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마수드 자자예리 사령관은 혁명수비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5년 전 얘기”라며 “지금은 봉쇄 문제를 제기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서방과의 핵협상을 맡고 있는 이란 최고위원회의 사이드 잘릴리 협상대표는 “지난해 1월 이후 중단됐던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6개국과의 협상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몇 시간 뒤 핵연료봉 개발과 미사일 발사라는 강경책을 꺼내든 것이다.
당분간 이란은 서방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할 전망이다. 현지 소식통은 “강온 양면책은 서방의 압박에 대한 이란의 전형적인 대응 방법 중 하나”라며 “지난해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관 습격 사건 당시에도 이란은 이런 전술을 구사했다”고 말했다.
◆원유 수입 많은 한국 ‘비상’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며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고 있는 한국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란산 석유 수입이 많은 점을 들어 제재 조치 적용에서 당분간 유예해 줄 것을 미 정부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동시에 이란 대신 다른 국가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총 원유 수입량의 9.6%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 수입대금은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이란 중앙은행에 개설한 원화계좌를 통해 한국의 수출대금과 상계처리하는 방식으로 결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서명한 이란 제재 법안은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제재 조치를 즉각 취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제재 조항 등은 다른 정부와 협상하거나 협의할 때 대통령에게 특정한 입장을 취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적 외교 권한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법 적용이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과 충돌한다면 이란 제재 조항 등을 강제적으로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이란뿐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나이지리아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국제유가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과격 이슬람단체 ‘보코 하람’의 잇단 테러로 북동부와 중부 등 4개주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일부 국경을 폐쇄했다. 보코 하람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교회 등을 폭탄으로 공격해 42명을 숨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