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공휴일이 된 北의 2012년 청명일
‘주체 100년.’ 12월17일 김정일이 사망했다고 북한방송은 발표했다. ‘주체’란 북한의 연호(年號)다. 남쪽은 독자적인 연호 없이 세계 공통의 ‘기원 2011년’에서 ‘기원’이란 표현을 빼고 쓴다. 일본이 헤이세이(平成), 대만이 민궈(民國)란 연호를 쓰고, 불교도 불기(佛紀)를 사용하지만, 북한의 ‘주체’처럼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 경우는 아니다.

북한의 연호가 중요한 것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북쪽의 ‘주체’ 연호는 1997년 7월 ‘태양절’을 제정하며 시작됐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 4월15일을 ‘태양절’로 하고, 그가 태어난 1912년을 ‘주체’ 원년으로 하는 연호 사용을 공표했다. 김일성 사망(1994년 7월8일) 꼭 3년 뒤다. 수령의 3년상을 지낸 북한은 태양절과 주체 연호의 제정으로 김정일 시대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태양절과 주체연호’라는 특별기사에서 이를 ‘새 역법의 탄생’이라 불렀다. 인류는 지구와 태양의 운동을 기준으로 달력을 만드는데, ‘인간세계의 참다운 역사, 자주의 역사는 인간 태양, 주체의 태양을 중심으로 엮어진다’며 ‘자연계에 태양이 있듯, 인간세계에도 인민들에게 광명을 주고 삶을 주는 유일하고 영원한 주체의 태양(김일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북한 전역에서는 이를 환영하는 군중대회가 이어졌고, 인민들이 감격했으며,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도 감탄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5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김정은을 ‘21세기의 태양’이라 불렀다. 그동안의 ‘대장 동지’를 처음으로 ‘21세기의 태양’으로 높여 불렀다는 점을 남쪽 언론은 주목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의 아버지 김정일에게도 같은 호칭이 이미 사용됐었다. 그러니까 북한의 논리로는 자연계의 태양처럼, 인류와 인민의 ‘태양’(김일성)이 있고, 그 계승자가 바로 ‘21세기의 태양’ 제1대(김정일)이며, 그 다음이 ‘21세기의 태양’ 제2대(김정은)가 된다.

태양숭배 사상이 휴전선 북쪽에서 강하게 불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대목에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관련 소식이 있다. 주체 101년(2012년)의 북한 달력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4월4일이 ‘빨간 날’로 표시됐다는 것이다. 전 인민의 성묘날이었지만, 작년까지는 무시했던 청명(淸明)을 이번에 공휴일로 지정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남쪽 언론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성묘 때문일까?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불(火)’ 항목을 보면, 청명에 우리 선조들은 새 불을 만들었다. 옛 사람들은 1년 내내 불씨를 살려갔지만, 불도 일종의 생명현상이어서 해마다 한번은 새 불을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청명에 내병조(內兵曹)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마찰해 새 불을 만들어 각 관청에 나눠주었다.

청명은 한식(寒食)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앞선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란 옛말이 있을 정도다. 한식에 음식을 데워 먹지 않는 풍습은 바로 청명에 새로 만든 불이 관청을 거쳐 관리들 집까지 도착할 동안 불이 없기 때문에 찬밥을 먹어야함을 의미한다. 청명은 24절기의 하나로 동지에서 꼭 104일 4시간10분 뒤, 한식은 동지 뒤 105일째의 날이다. 대개 겹치지만, 내년에는 4월4일이 청명, 4월5일이 한식이다.

이처럼 청명은 바로 새 불의 탄생일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은 주체 2세기의 첫 해인 주체 101년(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이라 선언했다. 우리 선조들이 청명에 새 불을 만들었듯이, 강성대국의 새 불을 지피겠다는 뜻에서 그 원년의 청명을 ‘빨간 날’로 정한 것이 아닐까? 물론 원래는 제2대 태양(김정일)이 강성대국의 새 불을 만드는 날로 임진년의 청명을 꼽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제3대 태양(김정은)에게 넘어간 것일 터이다. 성묘하는 날이라서 새삼 ‘빨간 날’로 지정한 것은 아닐 듯하다.

어쨌거나 이틀 뒤면 북한에서는 ‘주체 101년’, 남한에서는 ‘2012년’ 새해가 밝는다. 연호가 무엇이건 보통 사람들이 보다 행복한 세월이 왔으면 좋겠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