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외화차입 여건이 나빠지더라도 국내 은행들은 석달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향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크게 부각되거나 유럽 재정위기가 악화되면 외화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은행들이 비상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 긴급 점검

은행권, 달러 못빌려도 석달은 버틴다
금융당국은 20일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등 18개 은행의 외화자금 부장을 불러 외화유동성 현황을 긴급 점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는데 그 결과를 통보하고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영향도 살펴보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이 자리에서 18개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알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10월 기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6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보다 더 좋았다”며 “중장기 차환율(만기연장비율) 0%를 가정했는데도 18개 은행 모두 3개월 이상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한 은행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망으로 외화차입이 전면 중단된다 하더라도 석달은 문제가 없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중장기 차환율 0%에다 예금인출 사태를 비롯해 만기도래 유가증권의 차환이 안 되는 극단적 변수도 집어넣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은행별 10월 기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조만간 개별적으로 통보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김정일 사망 이상의 지정학적 악재가 한반도에 나타나더라도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하라고 은행권에 지시했다”며 “은행별로 비상계획을 세워 자체 점검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은행 비상체제 가동

은행들은 김 위원장 사망 소식에도 국내 은행들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크게 오르지 않아 안도하고 있다. 주요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북한 권력승계 불확실성은 있지만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은행권은 김 위원장 사망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면서 비상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국제금융센터도 이날 투자은행(IB)들의 견해를 토대로 “2011년 중 사무라이채 발행이 활발했으나 북한발(發) 악재로 내년 초에는 한국계 외화채권, 특히 사무라이채 발행이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은행은 김 위원장 사망 직전 5억달러 규모의 외화표시채권 발행에 성공, 악재를 코앞에 두고 적절한 타이밍에 달러를 조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8일 5억달러 규모의 달러표시채권을 발행했으며 14일 이 돈을 모두 입금받았다. 이 채권의 금리는 5년 만기 미 국채 금리에 345bp(1bp=0.01%포인트)를 더한 수준에서 결정됐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국제금융시장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이에 앞서 글로벌채권 발행에 성공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시기와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내내 외화표시채권 발행을 저울질하다 금리가 높아 일정을 뒤로 미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