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神보다 돈이 많은 헤지펀드…비결은 역발상 투자
[책마을] 神보다 돈이 많은 헤지펀드…비결은 역발상 투자
헤지펀드의 비밀주의는 레닌주의 지하운동 조직에서 비롯했다?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헤지펀드와 좌파운동을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사실이다. 1949년 최초로 ‘헤지된(hedged) 펀드’를 발명한 알프레드 존스는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레닌주의 조직에서 비밀활동을 했다. 존스는 당시 투자자를 알음알음 모집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경쟁자에게 노출하지 않는 조직 운영 방법을 익혔다. 그는 레버리지(차입)와 공(空)매도를 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해 수익을 올렸고, 헤지 펀드의 전형이 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13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일하며 국제금융을 취재한 세바스찬 말라비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헤지펀드의 이면을 파헤쳤다.《헤지펀드 열전》은 그 결실이다. 그는 11개 헤지펀드 및 대가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헤지펀드 운용 전략의 연원과 각각의 장단점까지 들여다봤다.

원제처럼 ‘신보다 돈이 더 많은(MORE MONEY THAN GOD)’ 헤지펀드 운용자와 트레이더들이 어떻게 그들의 부를 쌓아올렸는지 살핀다. 초기 헤지펀드 설립자들은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이 성공적인 항해의 이익 중 5분의 1을 수수료로 청구했다는 이유를 들어 20%의 성과보수를 책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트레이더들의 수익을 소득세가 아닌 자본이득세로 분류했다. 1950년대 최고 91%에 이르던 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는 이후 탄생한 헤지펀드에 우수한 인재가 모이는 토양이 됐다.

성공한 헤지펀드의 이면에는 항상 당대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역발상이 존재했다는 점을 발견해 가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돈을 번 마이클 스타인하트와 시세 추종으로 수익을 낸 코모더티 코퍼레이션이 단적인 예다. ‘블록 트레이딩’ ‘이벤트 드리븐’ 등 헤지펀드의 전략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헤지펀드의 성장 과정은 1960년대 이후 미국 경제학계를 지배한 ‘효율적 시장가설학파’와의 투쟁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장은 충분히 효율적인 만큼 장기적으로 시장 등락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수 없다는 주장에 헤지펀드들은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헤지펀드는 이 투쟁에서 승리하며 기관투자가들의 돈을 굴리고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이 책은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있는 증권업계와 국내 투자자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시장 등락과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수단”이라는 정부의 헤지펀드 도입 취지가 달성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처음 만들어진 헤지펀드의 20년간 누적 수익률은 5000%에 달했고, 최초 투자자의 투자금 1만달러는 48만달러까지 불어났다. 반면 주가 급락 등으로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수백개 헤지펀드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조지 소로스가 1987년 블랙먼데이를 거치며 8억4000만달러를 잃은 것에서 보듯 대가들도 손실을 피할 길은 없었다.

원인이 트레이더의 태만이든, 시스템 문제든 헤지펀드의 도산은 빈번했다. 저평가주를 매수하는 한편 고평가주는 공매도하는 ‘롱쇼트 전략’을 구사했던 1960년대 헤지펀드들은 주가 활황에 취해 공매도를 줄였다. 이는 1970년대 닥친 하락장에서 그대로 손실로 이어져 1세대 헤지펀드가 지리멸렬하는 이유가 됐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최첨단 리스크 헤지 기능을 총동원했지만 무너졌다. 산술적으로 도산할 확률이 10의 24승분의 1에 불과하다고 자신했음에도 말이다.

시장 수익률 대비 몇 배의 수익을 가져다 주지만 운용회사의 도산으로 원금을 모두 잃을 가능성도 높다.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이름처럼 위험을 헤지하기보다는 헤지(hedge)에서 ‘h’를 떼어낸 ‘에지(edge·극단)’에 가깝다.

이에 대한 해법도 이 책에서 제시한다. 저자는 △헤지펀드의 문제가 금융위기로 이어진 적은 없다는 점 △규모가 작아 ‘대마불사’의 딜레마에 처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에 비해 운용 주체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들어 헤지펀드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