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최대 관전 포인트는 ‘경영승계’ 구도의 변화다.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부사장이 어떤 자리를 맡느냐에 따라 경영 승계 구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작년에는 이재용 사장과 이부진 사장이 동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의 신호탄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 인사에선 특기할 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자녀들의 자리이동이 없었다.

때문에 이 회장이 내년 정기인사 때까지는 경영승계를 위한 준비작업에 더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이 내년에도 계속 정기 출근을 하면서 경영현안을 챙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각 사업부문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부회장급 인물들을 포진시켰다는 점에서다. 삼성 측이 부회장 승진과 관련, “그룹의 중핵경영진을 보강하고 시니어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한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외형상 큰 인사 변화는 없지만 삼성물산 출신이 대거 약진하고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 후계구도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물산은 정연주 부회장,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 이동휘 삼성BP화학 사장 등 세 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과거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 출신들이 주요 보직에 배치됐던 것을 감안하면 단연 ‘물산의 약진’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물산은 이부진 사장이 고문을 맡고 있는 계열사다. 후계구도에서 이부진 사장의 파워가 세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배경이다.

이서현 부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사장의 자리이동을 후계구도와 연관짓는 시각이 있다. 김 사장은 제일기획과 제일모직에서만 1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옮겼다. 엔지니어링은 이서현 부사장이 몸담고 있는 제일모직이 최대주주다. 김 사장의 이동으로 향후 경영승계 과정에서 엔지니어링이 이서현 부사장 관할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경영승계나 후계구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사장의 자리이동과 관련해선 삼성엔지니어링의 글로벌 사업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김 사장은 제일기획과 제일모직에 10년간 몸담으면서 글로벌전략, 경영기획을 맡은 데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각국 IOC 위원들과 친분을 쌓았다”며 “해외 플랜트 수주에 주력해야 하는 엔지니어링 업무에 이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