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한 여당과 야당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수정당을 자처해온 여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이나 자본이득세 강화 등 설익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1%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며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국경제신문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함께 발족시킨 포퓰리즘대책연구회 ‘아큐파이(Occupy) 포퓰리즘’은 7일 ‘포퓰리즘 행태 분석’을 주제로 두 번째 토론회를 가졌다. 포퓰리즘의 실체적 분석과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민주주의 약점 파고든 포퓰리즘

이날 주제발표를 한 이원희 한경대 교수는 포퓰리즘을 ‘무차별적인 혜택을 주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한번 도입하면 폐기하기 힘든 포퓰리즘성 정책들이 1970년대 산업화, 1980년대 민주화, 1990년대 세계화를 거쳐 실현된 압축 성장에 대한 불만으로 쏟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에는 선거에 이기기 위한 노골적인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는데도 정치권은 구태의연한 모습만 보여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게 됐다”며 “진보적인 주장이면 지지를 받는 시대 분위기가 포퓰리즘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종수 한성대 교수는 “정치권이 의정활동을 통해 지지를 얻기보다는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촛불집회처럼 합리성이 떨어지는 방식이 통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청년실업이 악화되는 등 사회적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포퓰리즘은 더 활개를 치게 된다”며 “정치권이 합리성을 결여한 정책을 남발한다면 국가적 재앙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이원희 교수는 “진보 정권에서 복지 아젠다를 선전하고 보수 정권이 이를 따라가면서 포퓰리즘이 과잉 재생산되고 있다”며 “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에는 포퓰리즘 정책이 극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포퓰리즘 실체 정확히 알아야

김동은 연세대 교수는 “‘아큐파이’ 시위가 많이 일어난 것은 월가가 이익은 자신들이 챙기고 손실은 사회에 떠안긴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국의 사정은 이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가 부채보다는 가계 부채가 더 문제가 되고 있어 미국과 똑같은 주장을 하기 힘들다는 것.

고인석 부천대 교수도 “계층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이지만 이것 때문에 감성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회 위원장인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에서 상위 일부 계층이 소득세의 대부분을 내고 있다”며 “포퓰리즘에 기대어 극단적인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복지를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복지에는 반드시 자신의 부담도 따른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부담하지 않더라도 후대에 그 부담을 떠안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원희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파생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포퓰리즘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사회와 경제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최악의 경우 다수결로 비합리적 정책들을 양산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퓰리즘 규제 제도화해야

정치권 입장에서는 포퓰리즘이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선거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고일두 산업대 교수는 “가령 보금자리주택은 주변 집값에 악영향을 주는 등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윤원 중앙대 교수는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정책들은 인기 교수가 되기 위해 출석을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를 견제하기 위해 원외정당 등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정치체제 자체가 포퓰리즘이 나오기 힘들게 돼 있다”며 “반면 정치가 성숙하지 못한 한국에서는 헌법을 바꿔서라도 직접적인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광 교수는 “동반성장이나 친서민 등 포퓰리즘은 우파와 좌파를 가리지 않고 나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서욱진/서보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