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 버린 아인슈타인…인간 과학자 그렸죠"
‘과학사 전도사’로서 평생을 매진해 온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2·사진)가 최근 독특한 책을 내놨다. 과학자들의 업적과 생애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담담하게 서술한 ‘인물과학사’란 책이다. 여느 책과 달리 과학자를 영웅시하지 않았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원자폭탄, 원자력발전 기술을 세상에 끌어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그의 앞에서는 친딸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로 표현된다.

박 교수는 7일 기자와 만나 “나는 기본적으로 위대한, 훌륭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며 “내가 해 온 일을 돌아볼 겸 또 과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인 그들이 세상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정리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권 ‘한국의 과학자들’ 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학 발전에 뚜렷한 공헌을 한 국내 과학기술자 92명의 생애를 서술했다. 2권에서는 해외 과학자들 63명과 함께 개화기 연희전문학교에서 근대 천문학 강의를 한 칼 루퍼스 등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 과학자 9명의 생애를 다뤘다. 루퍼스는 국내 ‘천문학 박사 1호’ 고 이원철 박사의 은사다.

박 교수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과학과 기술’ 등 잡지 및 신문에 기고한 글과 외부에 싣지 않은 글들을 서로 씨줄과 날줄로 엮어 이 책을 만들었다. 그는 “울분과 환희,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일반 역사와 달리 과학사는 선형적인 인간 기술 발전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분야”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유학을 떠나 미 캔자스대에서 사학 석사, 하와이대에서 사학 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당시 외국에 나가 너무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이학 전공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아 차선책으로 과학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귀국한 후로는 한국외대에서 30여년간 과학사 전담 강의를 했다. 서울대 이화여대 등 서울 주요 대학 중 그의 강의를 개설하지 않았던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박 교수는 엄청난 연구·개발(R&D) 자금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로 문과 인력에 치중된 사회 시스템을 꼽았다. 그는 “연구·개발이라는 게 결국 장비 돈 등을 주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치열하고 지루하게 한 가지 일만 하라는 건데 ‘신’ 이 안 나면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연구자들도 격려와 배려에 웃고 우는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인들의 사기가 별로 높지 않은 국내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박 교수는 “1960~1970년대만 하더라도 ‘두 개의 세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문과와 이과 간 벽이 높았고 소통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현재도 거의 변한 게 없는데 지금은 기술과 창의적 발상이 경쟁력인 시대”라며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고 연구인들의 사기를 높여 과학기술 분야로 인재를 많이 끌어올 방법을 온 사회가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