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거버넌스 논쟁, 이젠 지겹다
행정학자들이 대목을 맞았다. 대선 캠프, 정부부처, 이해단체 등에서 행정학자들을 찾느라 난리다. 차기정부 조직개편안 때문이다. 행정학자들은 각종 거버넌스 이론들로 수요자가 원하는 개편안을 제시할 것이다. 그야말로 맞춤형이다. 행정학자들이 조직개편의 정답을 절대 말하지 않는 건 정권마다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대선 캠프의 정부조직 윤곽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캠프는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들고 나왔다. 정통부 출신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과기부, 정통부 부활론을 주장한다. 또 어디선가는 바이오 경제시대에 대비, 바이오산업부 창설론을 말한다. 내세우는 공통적 이유는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전 국민의 공무원화도 부족할 만큼 온갖 부처를 다 만들어야 할 판이다. 이해 못할 건 중요하면 왜 꼭 전담부처가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행정학자 놀이터가 된 정부조직

대선 후보들이 국정의 우선순위를 과학기술로 하겠다는 것이야 백번 환영할 일이다. 모든 부처에 다 걸리는 게 과학기술이다. 하지만 그런 취지라면 지금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만 잘 굴러가도 충분하다. 조직은 조직의 논리라는 게 있다. 전담부처가 또 만들어지면 결국은 부처 간 돈 나눠주기 게임이 되고 만다. 공무원들이 ‘육성’의 나팔을 불어대며 돈을 들고 과학자들을 이리가라, 저리가라 노예집단 부리듯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과학자들의 자존심과 사명감은 그렇게 사라져간다.

과학기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정부는 지나친 간섭에서 발을 빼는 게 맞는 조합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기초연구 배분은 공무원보다 전문 과학자 집단이 더 잘한다. 정부 연구소는 자율성을 주고 책임을 물으면 된다. 산업기술은 기업의 몫인 만큼 정부가 돈을 나눠줄 게 아니라 세제혜택을 통해 자기 돈은 자기가 투자하도록 하는 게 훨씬 낫다. 중소기업은 별도 지원이 필요하다지만 그것도 정부가 연구개발 자금을 대주기보다 연구인력 채용을 지원,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게 효과적이다. 바로 이런 게 시스템의 선진화다. 안 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공무원이 과잉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 과잉권력 축소가 핵심

정부가 이해하기에도 벅찰 정도가 된 정보기술과 시장을 정통부를 부활해 육성하겠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제는 소프트웨어를 위해서라는데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정통부를 부활하느니 차라리 그 비용과 노력을 지식재산권 보호에 쏟는 게 소프트웨어 산업을 꽃 피우는 지름길일 것이다.

바이오산업부 창설론도 마찬가지다. 전담부처가 있어야 미래산업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과거의 경로 의존적 발상이다. 지금은 새로운 경로를 찾아야 할 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한국 제약산업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괴담이 돌지만, 오히려 그런 제도 하나가 전담부처 신설보다 백배 나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갖춘 미국은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이 가장 많은 국가다.

결국 난무하는 정부조직 개편의 속셈은 뻔하다. 정치인은 표만 얻으면 그만이고,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칸막이 만들어 돈을 나눠주는 권한을 챙긴다. 그들만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 뿐 정작 과학기술, 신산업, 시장발전은 뒷전이다. 정권마다 되풀이는 거버넌스 논쟁. 이젠 지겹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