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쓰고 봐도 글씨가 구불구불…'황반변성' 그냥두면 실명
얼마 전 60대 김모 할머니가 병원을 찾아왔다. 오래 전부터 독서가 취미라는 김 할머니는 며칠 전 책을 읽다가 느닷없이 초점이 맞지 않고 글씨가 휘어져 보이는 증상을 겪었다. 돋보기를 써도, 또 벗어도 글씨가 구부러져 보이는 증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의 눈 속을 들여다보니 시력에 가장 중요한 ‘황반’ 부위에 비정상적인 미세한 혈관이 자라나 있었다. 이 혈관으로 인해 황반의 망막전층도 심하게 부어 있었다. 할머니의 병명은 바로 ‘황반변성’이다.

실명을 유발한다는 안질환, 황반변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에게만 오는 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초기 황반변성 발병률은 13%로 매우 높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고령인구가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또 서구화된 식습관, 컴퓨터작업 등 과도한 눈의 사용, 스트레스의 증가, 자외선 지수의 증가도 황반변성 증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유병률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실명률’이다. 생각보다 많은 황반변성 환자가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명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최근 발표돼 충격을 줬다. 한국망막학회가 주요 병원의 환자 차트를 분석한 결과, 2005년과 2010년에 김 할머니와 같은 습성황반변성으로 치료를 받은 985명의 환자 중 16%인 157명이 시력 0.02 이하인 법적 실명 판정을 받았다. 환자 6명 중 1명꼴로 실명이다. 의료현장에 종사하는 의사의 입장에선 충격적일 만큼 매우 놀라운 수치다.

그렇다면 황반변성으로 인한 실명은 불가피한 것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먼저 병원을 찾아와 치료를 받았지만 실명하게 되는 환자들의 공통점을 살펴봐야 한다. 바로 ‘치료시기’다. 아직도 많은 어르신들이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을 생소하게 여기고 눈에 이상 증상이 생겨도 가벼운 노안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안과에서 흔히 사용되는 암슬러격자 테스트로도 충분히 황반변성을 조기 발견할 수 있다. 바둑판 무늬를 밝은 빛 아래서 30㎝ 정도 떨어져 한쪽 눈씩 가리고 보았을 때, 선이 곧게 보이지 않거나 작은 네모 칸들이 일정한 크기로 보이지 않으면 즉시 안과를 방문해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병을 발견하기만 하면, 과거보다 훨씬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신생혈관이 자라나는 것을 막는 루센티스 등의 항체주사가 도입됐고, 최근에는 첨단 PDT 광역학 요법과의 적절한 병행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정기적인 안과 검진이다. 황반변성은 수개월 내에도 병이 심각한 단계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유승영 < 경희대병원 안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