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두 똑같아지려 애쓰나…조금 더 멀리보고 자기 길 찾아라"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38)의 말투는 진지하면서도 정감이 있다. 벤처 후배들에겐 자상한 맏형이요, 인생의 멘토다. 성공한 벤처기업인이지만 아직도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다. 그래서 만나보면 늘 청년 같다. 그 청년이 이번에 또 다른 청년들을 만났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6명의 대학 졸업생들이다.

정치외교학, 중어중문학,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생들로 구성됐다. 어찌 보면 참으로 공통분모를 찾아보기 힘든 어제의 청년과 오늘의 청년들이 마주앉았다. ‘훈시’보다는 ‘공감’이, ‘막연한 분노’보다는 ‘진지한 고민’이 교차하는 자리였다.

▶이태영=요즘 20대 젊은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장병규 대표=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쓰다보면 가끔 의아할 때가 있어요.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자기만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면 다들 똑같아지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스펙이나 성형 열풍 등도 마찬가지죠. 왜 자꾸 남과 같아지려고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김병돈=예전에는 학점이나 토익 점수 정도만 스펙이라고 했지만 요새는 스펙의 개념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해외봉사나 동아리 활동도 다 스펙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장 대표=사실 대기업은 스펙에 따라 차별을 둘 수밖에 없어요. 지원인력만 수만명에 달하기 때문에 찬찬히 고를 수가 없는 거죠. 제가 운영하는 블루홀스튜디오는 토익 점수를 보지 않습니다. 지원자가 적어 영어 인터뷰를 직접 하면 됩니다. 만약 2만명이 지원하면 저도 스펙을 볼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학생 입장에선 질문을 달리해야 합니다. 스펙 쌓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데, 과연 그게 옳은 건지 스스로 물어봐야 해요. 돈과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정해진 조건 아래서 자신만의 색깔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임국빈=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기성세대들이 20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너만의 색깔을 만들라’는 말도 순위에 있었지만 결국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대기업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장 대표=그러고 보니 왜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요. 단순히 주위 어른들의 말 때문만은 아닌 거 같은데….

▶김진희=대학생들은 대학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등록금과 학비를 들여 공부합니다. ‘인풋’이 있기 때문에 ‘아웃풋’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연봉이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높은 게 사실이고 또 사회적인 평판도 무시하기 힘들죠.

▶김태우=대기업에 입사하면 나중에 다른 기업으로 옮길 때 유리하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 어렵죠.

▶장 대표=대기업이 채용을 많이 하고 인프라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다만 대기업 입사를 결정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라는 건 이런 의미입니다. 사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잡 디스크립션(직무 설명 내용)’을 통해 어떤 인재를 찾는지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그런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전공불문 O명 모집’ 수준으로 채용공고를 내요. 또 대학에서 삶을 돌아보고 고민할 시간을 갖기 어려운 게 한국의 현실이죠.

▶임국빈=대기업에 가려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모든 기반이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에 가면 처음부터 단계를 밟아야 해서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장 대표=얘기한 것처럼 대기업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형화된 시스템이 있으면 성장할 기회도 적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특히 업의 본질을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통상 대기업에서는 10년 이상 일하고 부장쯤 돼야 회사 돌아가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어떤 이유로 회사를 나오게 되면 자신이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일(창업)을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학습과정이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중요한 것은 학습과 경험이 자기 자신에게 쌓이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송경남=왜 취업을 하지 않고 창업의 길을 택했나요.

▶장 대표=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취직보다는 창업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고, 사실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결혼할 때 장모님이 벤처사업 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하셨다고 하대요.(웃음) 평소 창업 얘기를 많이 하는데 창업은 삶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가는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고요. 한국 경제가 더 발전하려면 제조업, 소프트웨어가 다 균형이 잡혀야 하고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균형도 맞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창업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다양성이 인정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병돈=요새는 창업하려고 해도 스펙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장 대표=스펙이라는 얘기를 하는 순간 이미 다양성의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겁니다. 스펙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발 ‘올인’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시간의 70~80%를 스펙 쌓는 데 쓴다면 20~30%는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 썼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태영=지금까지 많은 슬럼프와 좌절을 겪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장 대표=슬럼프가 오거나 고민이 될 때는 혼자 한강에 갑니다. 아내도 알아요. 문자로 ‘한강 다녀올게요’라고 보내거든요. ‘고민이 많아서 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욕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놓지 못하는 게 많아요. 그럴 때 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머지는 버릴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요.

▶김병돈=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씀 정말 공감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청춘콘서트다 뭐다 해서 각종 멘토링은 많은데, 그게 다인 것 같습니다.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장 대표=창업을 고민하는 20대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잃는 게 뭐가 있냐. 빚만 안 지면 된다. 경제적으로 잃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1~2년 시간을 쓴다지만, 그게 알차다고 느끼면 되는 거 아닌가. 돈은 못 벌어도 괜찮습니다. 그게 자기 색깔을 찾는 길입니다.

▶김병돈=그런 게 잘 사는 인생이라고 인정받는 사회가 올까요.

▶장 대표=될 겁니다. 그렇게 돼야 하고요. 경제시스템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제조업 분야에서 일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의사 변호사 대기업 직원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다양성을 강조했습니다. 남들만 따라가다보면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길을 찾는 게 중요한데, 자기 길을 찾는 건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용기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조금만 멀리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임원기/조미현 기자 wonkis@hankyung.com

■ 장병규 대표는

'네오위즈' '첫눈' 창업자…스타트업 기업 투자하며 개발·경영 노하우 전수

장병규 대표는 대구과학고와 KAIST 전산학과를 나왔다. 1997년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나성균(현 네오위즈 대표)을 만나 만 24세 나이에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자동 접속 프로그램 ‘원클릭’과 인터넷상의 가상 캐릭터인 아바타를 상용 모델로 내놓아 주목받았다. 채팅 사이트 ‘세이클럽’으로 급성장한 네오위즈가 피망 등 게임 부문에 집중하자 당시 인터넷사업본부장이던 장 대표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평소 꿈꿨던 검색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2006년에 네오위즈에서 나와 ‘한국판 구글’로 불린 검색엔진 ‘첫눈’을 개발했다. 당시 정식 서비스도 하지 않았지만 국내외 거대 IT 기업들이 눈독을 들였다. NHN이 구글을 따돌리고 350억원에 이 기술을 인수해 검색엔진 업그레이드의 발판으로 삼아 화제가 됐다.

그는 첫눈을 매각한 뒤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2007년 게임업체 블루홀스튜디오를 설립, 온라인게임 테라를 개발했다. 3년이 넘는 개발 기간을 거쳐 올해 출시한 이 게임은 올 신작 중 최대 히트작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