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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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이유 내지 핑계는 많다. 회식이 잦았다, 새 프로젝트에 투입돼 눈코 뜰 새 없었다, 스트레스가 심해 담배 없이 견디기 힘들었다, 주식시장이 엉망진창이었다, 경기가 너무 안좋았다 등.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로 계획이 무너졌을 수도 있다.
거창한 목표 아래 기세 좋게 시작했던 일이 흐지부지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처음부터 무리했거나 아니면 작심삼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1월 초 바글바글하던 영어학원과 헬스센터 모두 보름 정도 지나면 자리가 비기 시작, 두 달째가 되면 듬성듬성해진다.
‘해야 한다’ 혹은 ‘할 수 있다’에 매달려 출퇴근시간, 업무량, 상사의 성향, 생활태도, 사회적 여건 등 현실적 제약을 무시한 대가다. 혼자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도 많다. 미처 짐작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막상 대들어 보면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수도 허다하다.
재테크 특히 증권 투자는 더하다. 올해 증시를 나타낸 사자성어로 ‘용두사미(龍頭蛇尾)’가 꼽힌 것만 봐도 그렇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상반기에 2228.96까지 올랐던 코스피지수가 하반기 들어 급락한 데 따른 비유다.
부푼 기대와 달리 끝이 허망한 건 증시나 개인의 재테크 혹은 자기계발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직후 ‘성역 없는 줄기찬 사정’을 내세웠지만 임기 말 아들 김현철을 구속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법대로 사정’을 선언했던 그 역시 임기 말 세 아들의 비리 연루로 곤욕을 치렀다.
DJ정부의 ‘신지식인 선정’ 사업 또한 창대한 시작에 비해 터무니없는 결과로 끝난 예 가운데 하나다. 외환위기로 무력감과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겠다며 1998년 한 해에만 심형래 씨를 비롯 611명을 선정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 예산지원이 중단되는 등 유야무야 됐다. 남은 건 심씨의 몰락으로 대변되는 씁쓸함뿐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이행률은 18.2%, 공약 미착수율은 24.4%였다. 다른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과도 크게 차이날 리 없다. 실무를 모른 채 힘이 생겼으니 뒤집어 엎겠다고 나서거나 명분과 다른 욕심을 추구하려 들면 뜻같지 않은 현실에 부딪쳐 당황하기 십상이다. 개인은 물론 조직의 수장 역시 의욕을 앞세워 큰소리치기보다 실천 가능성을 따져 작은 문제부터 해결할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