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 중 하나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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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때 만난 다문화가정 母子…더이상 이방인 아닌 '너와 나'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
동네 주민들이 정성스레 차려준 시골 점심밥상을 마주 대한 우리 일행은 서울 어느 고급 한정식집이 이보다 맛있겠냐는 듯이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밥값은 제대로 하자 싶어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인근 논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느 집 담벼락 너머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모자(母子)가 눈에 들어왔다.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는 조용한 마을에 모처럼 들리는 떠들썩한 사람 소리가 정겨웠던지 대문 앞에 서 있는 필자에게 쪼르르 달려와 그동안 갈고닦은 듯한 90도 인사를 건넸다. 시선을 마당 한가운데로 돌리자, 아이의 엄마가 한눈에도 동남아쪽 어느 더운 나라에서 건너온 걸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다름 아닌 다문화가정이었던 것.
수인사를 나눴으니 안부라도 묻자 싶어 “한국 살기 괜찮죠? 뭐 불편한 건 없나요?”했더니, “네, 좋아요. 간혹 베트남 음식이 먹고 싶은 것만 빼고요”라는 유창한 우리말이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엔 결혼 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를 포함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분들이 2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체류 외국인만 하더라도 130만명에 육박한다 하니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혈통’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의 눈에 이미 우리가 다민족으로 비쳐진 기록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인 화가 랜도어(A.H. Savage Landor)는 1895년 ‘Corea or Cho-sen’이란 책에서 “아시아에 있는 거의 모든 인종의 표본이 그 조그만 반도에 정착한 듯하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도 ‘국제결혼가정’이나 ‘혼혈아’라는 다소 인종차별적인 정서를 없애고자 만들었지만, 왠지 우리의 일반가정과 선을 가르는 또 다른 이분법적 접근이 아닐까라는 우려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젠 다문화가정을 더 이상 이방인 취급해선 안 된다. 그들은 그냥 우리들 중 하나일 뿐이다. ‘방가방가’라는 블랙코미디영화에서 한국 청년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꾸로 동남아인인 양 행동해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봉사활동을 모두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영화의 잔상이 왜 계속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