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시인' 신승철 씨의 아름다운 명상 노래
‘느티나무 등걸에 움푹 팬 채 드러난 구멍자리/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제 운명일 뿐/아무도 누구를 위로해줄 수 없다./저 고목도 희망이 있을까, 무심에 움직이는/이 마음은 또 뭔가.//물가 깊숙한 곳에 허우적거리는 풀들/안 보여도 거친 물살에 안 보여도/그 삶, 눈에 환히 그려진다.’(‘그 침묵에 도달하지 못하리’ 중)

신승철 시인의 새 시집 《더없이 평화로운 한때》(서정시학)를 이끄는 주된 정서는 침묵과 그리움이다. ‘저 뚜렷한 고요 속에’ ‘그리운 환(幻)’ ‘여백’ ‘무상(無常)’ ‘아직도 가야 할 길’ 등 5부로 나눠진 시집에는 ‘침묵들의 아릿한 잔치’가 펼쳐진다. 고요한 성찰을 통해 더 깊고 근원적인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시인의 열망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것들을 정성들여 찾아 나선다. 뭇 별들이 맑게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그 빛이 ‘사랑 안에서’ 생겨난 아픔의 결실임을 노래한다. 시 ‘산책’에서는 호수의 푸른 빛을 하늘이 오래 담겨서 생겨난 ‘멍’으로 묘사한다.

‘불성(佛性)’ ‘지켜보는 너’ 등의 시편에서는 불가적 명상과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눈길’ ‘길’ ‘밤섬’ 등 단형의 시편들은 응축된 시어를 통해 더 큰 울림을 준다.

신씨는 1978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의사 시인’이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큰사랑노인병원장을 맡고 있다.《너무 조용하다》《개미들을 위하여》 등 시집과 《한 정신과 의사의 노트》《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등 에세이집을 펴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