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재정위기가 확산일로를 걷자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들에 대손준비금을 대폭 확충해 쌓도록 지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향후 부실에 대응하기 위해 적립하는 대손준비금은 4분기에만 최대 1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또 은행들이 다음달께 실시할 재무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 때 지금보다 훨씬 악화된 시나리오를 적용해 실시토록 지도하고 있다.

◆“스트레스 테스트 조건 강화하라”

"은행 대손준비금 1조5000억 더 쌓아라"
금융당국은 유럽 재정위기가 국내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기업 부실이 현실화하면 은행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이나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에 당장 ‘적신호’가 켜진 것은 아니지만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못할 경우 ‘제2의 금융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은행들이 분기별로 3000억~4000억원씩 쌓았던 대손준비금을 4분기엔 적게는 1조원에서 많게는 1조5000억원까지 늘려 적립하는 방안을 은행들과 협의 중이다.

대손준비금은 실제 손실을 기준으로 쌓는 대손충당금과 별도로 미래 손실을 감안해 적립하는 것이다. 은행들이 대손준비금을 쌓게 되면 그만큼 배당은 줄지만, 향후 신용손실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유럽의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 기업대출이 급격하게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에 기업대출과 관련된 준비금 적립기준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라고 한 것은 ‘완충장치’를 견고하게 구축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9월 말 7조9000억원이던 대손준비금 잔액이 연말에 가면 최대 9조4000억원으로 20% 정도 증가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아울러 은행들이 특정한 조건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도 보수적인 기준 아래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외환시장도 불안

"은행 대손준비금 1조5000억 더 쌓아라"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불안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6일 연속 상승하며 1164원대로 올라섰다. 지난달 28일 1094원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70원가량 뛰었다.

전문가들은 1200원선을 심리적 저항선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환율이 1200원으로 튀어 오르자 대규모 시장개입을 통해 환율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환율이 지금보다 더 오르면 외국인이 환차손을 우려해 자금을 회수하고 이것이 다시 환율 급등을 부추길 수 있다”며 “현재 외환시장과 채권시장 모두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한 은행의 외환딜러는 “유럽 충격의 강도에 따라 환율이 단기적으로 1200원선까지 치솟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한국의 외화 유동성이 괜찮은 편”이라며 “한·일, 한·중 통화스와프도 확대 돼 과거 같은 환율 급등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류시훈/주용석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