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은 얼굴·침대는 과학'…'業' 낯설게 보고 再정의를
최근 새로운 즐거움이 하나 생겼다.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거침없이 욕을 해대는 치열한 전략가 세종대왕을 만나는 일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매력은 한마디로 사극이 사극같지 않다는 점이다. 예전에 보았던 대부분의 사극들은 왕실과 귀족들의 갈등을 소재로 삼았다. 관전 포인트도 역사 다큐멘터리와 비견할 만한 충실한 고증과 진중함이었다.

그런데 ‘뿌리깊은 나무’는 스스로를 사극의 형태를 띤 미스터리 스릴러로 정의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대업인 한글창제 과정을 그리는 듯하지만, 훈민정음 반포 1주일 전에 벌어진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해결이 핵심 스토리다. 이쯤 되면 제 아무리 연속극 기피증 환자라도 텔레비전을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이처럼 자신을 새롭게 정의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사업에 성공하는 사례들이 요즘 눈에 뜨인다. 안경업체 룩옵티컬은 ‘안경은 얼굴이다’란 광고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잘생긴 닉쿤이 등장하는 광고를 보면 정말 안경이 얼굴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룩옵티컬의 진짜 성공비결은 멋진 광고가 아니다. 업(業)을 새롭게 정의하는 관점의 차이가 핵심이다. 룩옵티컬 매장은 화장품이나 패션소품을 좋아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기존 안경점은 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찾는 의료기기 전문점이다. 하지만 룩옵티컬 매장은 멋져 보이고픈 욕구를 가진 젊은이들이 찾는 쇼핑몰이다. 급기야 안경알 없는 안경을 쓰는 젊은이가 생겨날 정도다. 룩옵티컬의 안경은 그들에게 귀걸이나 목걸이와 비슷한 존재다.

애플의 아이팟이 출시와 함께 폭발적 인기를 얻은 것도 전자제품답지 않은 파스텔톤의 색과 세련된 디자인이 차지하는 몫이 컸다. 이제는 거의 모든 모바일 디바이스가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지만, 유독 애플의 아이팟만이 여전히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다른 제품들이 디자인을 미적 요소로만 여길 때 애플은 자신의 업을 재정의하는 수준까지 디자인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업을 재정의해 성공한 사례에는 소비재의 패션 액세서리화 말고도 몇 가지 패턴이 더 있다. 제품에 서비스를 더하고 기능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패턴이다. IBM은 원래 비즈니스에 적합한 기계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체였다. 그런데 IT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컴퓨터 제품의 차이가 줄어들자 변신을 시도했다. 컨설팅 사업부를 사들이고 노트북 사업부를 팔아 전통적 제조업의 경계를 넘어섰다.

이제 IBM 매출의 절반 이상은 컴퓨팅 파워를 이용한 컨설팅 및 아웃소싱 서비스에서 나온다. 업이 바뀌자 자연스럽게 IBM에는 자사의 제품을 이해해 사용하라던 고압적 자세는 사라지고, 고객의 필요를 듣기 위해 몸을 낮추는 노력이 늘고 있다.

스타벅스는 기능보다 경험을 강조해 업을 재정의한 유명 사례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는 세일즈맨 시절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에 들렀다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진한 커피 향 너머로 손님과 대화하는 바리스타의 우아한 손놀림을 보면서 미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독특한 경험을 나눠주고 싶었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 에스프레소를 고집하는 커피 장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동업을 제안했다. 슐츠는 처음부터 고객에게 커피 그 자체가 아닌 유럽의 카페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지금은 스타벅스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은 프라푸치노에 대해 그가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것도 얼음이 들어간 냉커피는 유럽식 카페 경험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업을 새롭게 정의하려면 먼저 자신의 사업을 낯설게 보는 관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詩)에서 쓰는 비유법으로 사업을 정의하는 연습은 큰 도움이 된다. ‘내 마음은 호수’라는 말은 평온함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마음을 호수에 비유한 예다. 이런 식으로 ‘안경은 얼굴이다’라든가, ‘침대는 과학이다’라고 하면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낯선 시각은 처음에야 불편하지만 동시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도 한다. 업을 재정의한 기업이 자신의 주장대로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우리 고객들은 다 안다. 세상을 낯설게 보는 일이 얼마나 신선하고 즐거운 일인지. 더 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업을 재정의해 우리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주길 바란다.

김용성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