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와 관련,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회가 FTA를 비준하면서 한 · 미 양국 정부에 ISD를 재협상하도록 권고하면 협상 발효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미 합의가 이뤄진 국가 간 협정을 야당이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재협상 카드를 빼든 건 옳지 않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만 다수결 원칙도 분명히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 미 FTA 논쟁에 힘을 낭비하고 있는 게 벌써 언제부터인가. 한 · 미 FTA 논쟁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국익에도 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대통령이 오죽하면 이런 제안을 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내놓을 카드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이 FTA 반대를 야권통합의 선명성 경쟁에 지렛대로 쓰고 있어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데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내년 총선을 생각해 날치기 비준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어서다. 자칫 비준이 늦어지면 내년 1월1일로 잡았던 협정 발효 시점은 또 다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회가 제안을 받아들여 FTA를 비준한 뒤 우리 정부가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한다 해도 이를 미국이 받아들일지 여부다. 외교통상부는 한쪽 국가가 강하게 재협상을 요구하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우리 쪽 얘기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비준 서명까지 끝낸 한 · 미 FTA 이행법안을 ISD 개정 후 의회가 다시 통과시킨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 미 FTA 이슈가 내년 우리 총선과 대선에도 계속 논란거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어쨌든 공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일단 이 대통령의 제안을 미흡하고 실망스럽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오늘 의원총회를 열어 제안 내용을 보고한 뒤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민주당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