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0대 후반의 한 여성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찾았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1층 회의실에 도착했다. 임원 3명이 그를 맞았다. 이 여성은 세 가지를 요구했다. 과도한 임원 연봉 제한,경영 투명성 제고,취약계층 지원 등이었다. 임원들은 경청했다. 그의 이름은 노라 내시.의회 의원도 반(反)월스트리트 시위대도 아닌 성 프란체스코 수녀회 소속 수녀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시위대가 월가에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수녀들이 조용히 월가를 점령해왔다"고 전했다. 수녀들의 주주권리운동이 기업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해왔다는 것이다. 수녀회는 기업 주식을 사고,이를 통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 셈이다.

◆"성인 비디오게임 팔지 마라"

필라델피아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수녀회 소속 내시 수녀가 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4년부터.환경오염과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주요 관심사였다. 그는 투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기업사회책임위원회'를 만들고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투자금은 참여한 수녀들의 퇴직금.1979년에는 '기업책임상호신뢰센터(ICCR)'에 가입했다. ICCR은 기독교 교리를 기반으로 투자를 통해 행동에 나서는 단체다. 운용하는 기금 규모가 1000억달러에 달한다.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GE) 주주총회에 참석해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잭 웰치 당시 GE 최고경영자(CEO)는 내시 수녀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그를 만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직접 수녀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로버트 스티븐스 록히드마틴 CEO와 칼 헨릭 스반베리 BP 회장은 회사 경영에서 내시 수녀의 의견을 항상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녀회는 다양한 회사의 경영에 문제를 제기했다. 맥도날드에는 소아비만 대책을,엑슨모빌에는 석유 채굴로 지반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월마트에는 매장에서 성인 비디오게임을 팔지 말라고 촉구했다. 지난해에는 골드만삭스 주총에서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를 비롯한 임원 5명에게 총 7000만달러를 지급한 것에 대해 보수정책의 타당성을 주주들에게 설명하라고 주장했다.

◆조용한 행동주의

NYT는 "성 프란체스코 수녀회는 1980년대 미국 사회에 등장한 주주 행동주의 형태 중 특별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기업 주요 사안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연기금,투자자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한 기업의 이사회를 뒤흔들고 CEO를 교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헤지펀드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녀회는 도덕성을 앞세워 조용히 기업들을 압박하는 전략을 택했다. 문제가 되는 회사가 정해지면 주총 발언권이 있는 최소한의 주식을 샀다. 이 자체만으로 핵무기 같은 위력이 발생한다. 그들이 임원진 면담을 요구했는데 기업이 거부하면 그 파장은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투자 자문기관 글래스루이스앤드코의 로버트 매코믹 컨설턴트는 "주총에 참여한 수녀를 문전박대한다면 어느 누구도 잘했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가 가진 도덕적 권위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조용한 방법으로 사회의 관심을 일으키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NYT는 "처음에 성가시게 여겼던 기업 경영진들은 종교인의 도덕적 제안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내시 수녀는 "우리는 기업을 위기에 빠뜨리려는 게 아니다"며 "단지 그들이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