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 인하 대책으로 내놓은 알뜰주유소가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3사가 15일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가 실시한 알뜰주유소 공동 구매 입찰에 참여했으나 유찰됐다. 막판까지 참여 여부를 고심한 3사는 이날 오후 3시 마감 직전에 입찰 관련 서류를 냈지만 입찰가는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쳤다.

◆1차 입찰 유찰,정부 "될 때까지"

지식경제부는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공동구매 입찰에서 낙찰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정유 3사는 석유공사와 농협이 원하는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정유사들 중 유일하게 현대오일뱅크만 물량 공급과 기존 자사 주유소와의 관계 등을 이유로 1주일 전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하고 이 신경전에서 발을 뺐다.

지경부 관계자는 "2차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지만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정부는 싼 가격에 사길 원하고 정유사는 비싼 가격에 기름을 공급하길 바라는 만큼 한번의 입찰로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석유공사와 농협 측은 입찰가를 확인한 후 정유사들에 두 번 정도 가격 재고를 요청했지만 결국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들이 입찰가를 얼마로 써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알뜰주유소에서 시중가보다 ℓ당 70~100원 싼 값에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잡은 만큼 40~50원가량 낮은 가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보통휘발유 기준,유통비용과 마진은 ℓ당 100원 안팎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 의지가 강하지만 정유사 입장에서 출혈까지 감수할 순 없다"며 "정부의 입장을 고려는 하겠지만 상반기 기름값 할인이 미친 충격이 컸던 만큼 파격적인 인하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 가능할까

1차 입찰이 유찰된 만큼 정부는 원하는 수준의 가격이 나올 때까지 추가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공급 다변화를 위해 석유공사를 통해 외국 정유사를 통한 석유제품 수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자를 정하는 일정이 미뤄지면 정부가 구상한 알뜰주유소가 계획대로 다음달 중순 출범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1차 입찰 불발은 정부가 밀어붙인 정유사 '손목 비틀기'의 예고된 결과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사들은 일단 입찰에 참여해 정부의 기름값 대책에 발은 맞췄지만 그렇다고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기존 주유소들과의 거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기존 주유소들은 아무리 비용절감을 한다 해도 ℓ당 50원을 할인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며 "공정하지 않은 경쟁으로,알뜰주유소 운영 방식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가 입찰 불참을 선언한 이유 중 하나도 "기존 거래 주유소나 대리점에 피해가 가고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입찰에 참여한 한 정유사 관계자는 "이후 진행되는 상황들을 보고 2차 입찰 일정이 나오면 참여 여부부터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알뜰주유소

석유공사와 농협이 대량으로 공동 구매한 휘발유 경유를 공급받아 파는 주유소.농협 주유소와 일부 자가폴 주유소,고속도로 주유소를 일반 주유소보다 ℓ당 70~100원 싼 알뜰 주유소로 운영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윤정현/박신영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