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에 대한 도전이 거세다. 월가에서 시작된 소위 점령시위와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마치 시장경제에 대한 단죄나 심판인 양 여겨지면서 시장을 흔들려는 시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다. 시민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세력들은 저마다 이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며 부자에게는 세금을, 학생과 청년, 그리고 서민에게는 복지를 퍼주자고 부르짖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 역시 2040세대를 겨냥한 반시장적 정책을 양산해낸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원리를 부정하는 그 어떤 방법으로건 서민의 삶을 개선시켰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마치 마약과도 같이 그것은 국민경제를 파괴하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왔다. 정치권이 선의(善意)를 내세워 경제 정책을 비틀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져만 갔다. 공개경쟁에 기반한 시장원리는 그나마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는 장치다. 복지 포퓰리즘에 무너진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영국 속담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선의1 : 청년 채용 과정에서 경쟁을 줄여주자 / 결과 : 채용의 60%는 빽과 연줄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구직 경로를 분석해 보니 인적 네크워크 의존도가 60% 안팎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왔다. 온갖 연줄과 '빽' 등 인맥을 통한 구직이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혈연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 사회의 후진적 단면이다.

KDI가 한국노동패널 자료 5년치 데이터를 취합한 통합 샘플을 구성, 6165명의 신규 취업자들에 대한 구직경로 분포를 추정한 결과다. 조사대상 샘플은 첫 취업자와 경력자 취업자를 모두 포괄한 것으로 첫 취업자와 경력자 인맥 의존도는 각각 39.9%와 60.1%였다. 경력직의 경우 전 직장에서의 레퍼런스 등 정보의 전달 측면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첫 취업자의 인적 의존도까지 이렇게 높다는 건 기회의 균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물론 기업의 인지도가 낮거나 우수 인재의 자발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규모 기업이라면 소개나 추천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업원 500인 이상의 대형기업조차 소개나 추천이 전체 고용의 47%에 달할 정도로 특채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정작 공개 채용은 32.6%로 밀려났다.

공개경쟁을 거부하는 반시장적 분위기가 오히려 특수층의 은밀한 채용을 장려하는 형국이다. 취업자 수가 좀 늘었다고 고용대박 운운해봤자 고용시장에서 균등한 기회 부여,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무용지물이다. 차별을 시정하자며 학력 등 정보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외쳐대는 시민단체나 좌파들도 마찬가지다. 지방대 출신이나 인턴 등의 실제 채용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인맥이 더 판을 친다. 치열한 공개경쟁이 가장 공정하다.

선의2 : 2040 제로금리 대출 등 살기 편하게 / 결과 : 청년 세대 10년 내 빚더미

정부와 한나라당의 '2040 껴안기'가 눈물겹다. 김황식 총리는 13일 국무위원과 장관급 위원장을 소집, 2040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고용 · 보육문제는 물론 소통 차원에서 '국민 참여형 정책입안'의 필요성도 제기됐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제로금리 대출, 만2세 이하 아동에 보육료와 양육수당 지원,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세제혜택 부여 등으로 이번 주 2040 대책을 발표한다.

이런 움직임은 젊은층이 여권에 등을 돌리는 것은 취직도 잘 안되고 돈도 없기 때문인 만큼 이들에게 당근을 줘 보듬고 달래면 표심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뇌물형이거나 아부형 대책으로 민심이 돌아올지 여부는 둘째치고 장차 닥쳐올 뒷감당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여당은 청년층이 가난한 것은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와 대기업과 기득권층의 탐욕이 낳은 양극화 탓이라는 논리를 깔고 있다. 자연히 해법은 무차별적이고 퍼주기식 복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자꾸 야당의 포퓰리즘을 따라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젊은층이 가진 게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유산이 많지 않은 이상 사회경력이 짧은 젊은이가 어떻게 20~30년간 노력해 부를 축적한 중 · 장년층의 여유를 갖겠는가. 그런데도 이런 차이를 마치 세대간, 계층간 양극화의 증거라도 되는 양 몰아가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전제가 잘못됐으니 처방이 적절할 리 없다. 정부 여당 할 것 없이 2040 대책이랍시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달콤해 보이는 2040 대책이 10년 안에 반드시 부메랑으로 젊은층을 덮친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알고도 모른 척할 것인가.

선의3 : 서울 시민들의 민원은 모두 해결 / 결과 : 市행정 대혼란 불 보듯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후 시장 집무실이 있는 시청 별관 앞 덕수궁 돌담길이 민원 해방구로 변했다는 보도다. 박 시장과 직접 면담하려는 민원인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곳을 점령하고 있다. 용산 업무지구 개발을 반대하는 서부이촌동 주민을 비롯, 뉴타운 문제를 둘러싼 서대문 가좌지구,송파 거여 마천지구 주민들도 이런 점령시위 끝에 기어이 시장과의 면담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엊그제 일요일에는 민노총의 반FTA시위가 서울시내를 온통 마비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정당한 행정 절차를 외면한 채 시장을 만나 떼만 쓰면 민원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수준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더구나 이런 민원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박시장은 "좋은 일"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참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홉스식 투쟁을 정당화하는 궤변이다. 시민 사회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자기 이익 추구를 위해 자기 의사에 따라 참여하는 시장(市場) 사회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의 이익을 자동 조절해주는 시장적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한다. 개인의 이익을 조절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시민들의 양식이요 적절한 절차다.

하지만 정치적 과정이 시장 메커니즘과 법치주의를 대체하게 되면 정당한 의사결정 과정은 산산조각 나고 오로지 시위라는 원초적 힘의 크기에 따라 국정과 시정이 결정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정치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과 불능 상태에 필연적으로 함몰된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갈등하고 대립하는 민원을 모두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가뜩이나 시청과 여의도는 시위꾼으로 몸살이다. 선량한 시민들은 이들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에 산책을 포기하고 밤새 요란한 앰프 소리에 잠을 설친다. 시민 모두를 무정부적 상태로 몰아넣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