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1일 국회를 방문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촉구하려던 계획이 발표 3시간 만에 취소됐다. 민주당이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며 반발한 결과다. 국회와 청와대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15일로 방문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한 만큼 방문은 미뤄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우스운 변명이다. 그날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 간 면담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무언가 상황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면 15일이 돼봤자 바뀔 것은 없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주말(12~13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재협상 약속을 받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청와대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한 · 미 FTA에 대한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도 '재협상 후 19대 국회 처리'라고 한다. 손학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소신이 달라도 당론을 따라야 한다"며 온건파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미 대통령의 FTA 관련 국회연설 요청도 무산시킨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무작정 대통령과의 대화를 거부해서는 곤란하다. 한 · 미 FTA는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국가 간 협약으로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협조를 구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밀어붙이기 명분쌓기'라고 평가하지만 민주당이야말로 야권 통합 등을 위해 국가적 이슈를 당략의 볼모로 삼고 있다는 것이 진실 아닌가. 민주당의 FTA 반대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다. 범야권 통합과정에서 선명성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국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FTA 토론을 위해 필요하면 당 지도부가 청와대를 방문하겠다고까지 밝히지 않았나. 말장난도 이 정도라면 너무 심하다.

물론 대통령 측도 국회 방문에 앞서 사전에 충분한 물밑대화를 나누었어야 마땅했다. 여의도와 담을 쌓고 지내던 대통령이 느닷없이 국회를 찾아와 국회의장실에 앉아 야당 지도부를 기다리겠다니 민주당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을 수도 있다. 이런 지경으로까지 지금 정치는 실종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회 발표대로 오는 15일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