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알렉산드로스ㆍ다빈치…영웅의 '옥에 티'도 본 서양역사
윌 듀런트는 《철학 이야기》로 잘 알려진 미국의 문명사학자다. 인류 사상사를 인물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책은 철학 입문자들의 바이블로 꼽힌다. 1935년 《동양의 유산》부터 1975년 《나폴레옹의 시대》까지 11권의 《문명 이야기》 시리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서로 인정받는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이 《문명 이야기》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압축한 책이다. 4대 문명의 시작,고대 그리스와 로마,기독교의 성장,르네상스와 종교개혁,셰익스피어와 베이컨의 근대까지 1만년 이상의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역동적으로 펼쳐보인다. 옛날 이야기를 구술하는 것 같은 문체가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책이다.

중국의 천지창조신화를 보자.그는 거인신 반고(盤古) 이야기를 이렇게 푼다. '이 거인신은 1만8000년 동안이나 일을 해서 기원전 222만9000년에 우주를 만들어냈다/…/처음에 인간은 이랬다. "사람들은 짐승과 같았다. 몸에 두른 옷이라곤 제 가죽뿐이고,날고기를 먹고,어미는 알지만 아비는 알지 못했다. "오늘날 방식으로 표현하자만 다음과 같다. "밍크코트를 입고,날스테이크를 좋아하며,남자들은 공짜 사랑을 즐겼다. "'

영웅들의 위대성은 물론 인간적 약점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남다른 취향에도 시선을 던질 정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관련,"그는 훌륭하게 말하는 법을 알았지만 정치와 전쟁을 두루 겪으면서 수많은 오류에 빠졌다. 독단적 신앙을 넘어섰으나 마지막까지 미신에 붙잡혔다"고 말한다. 예쁜 옷을 좋아하고 여자를 혐오했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향에 대해서는 그의 어린 시절 환경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서자로 태어나 입적된 뒤 어머니의 사랑 없이 절반쯤 귀족적인 안락감 속에서 양육됐다"고 서술한다. 그만큼 다양한 시선으로 인물과 시대를 조명한다. 역사를 잇는 큰 길을 걸으면서 사실(史實)을 관찰하는 시선에 담긴 철학적 사색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덕목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