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재협상은 수용불가..서비스위원회로 풀어야"
학계는 '재재협상' vs 'FTA 수용 대응력 확보'로 나뉘어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둘러싸고 공방이 가열되자 핵심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해법이 난무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국민투표 회부, 제도 폐기 또는 개선을 주장하고 있고 학계에서도 온라인, 소셜미디어(SNS), 기고 등을 통해 각양의 해결책을 제시해 오히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다.

정부는 한미 FTA 협정문의 개정에 대해 난색을 보이면서 양국 정부 간 합의한 '투자. 서비스 위원회'를 통한 해법찾기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ISD 폐기를 위한 재재협상 가능'과 'FTA 수용, 대응능력 확보' 주장이 맞서고 있다.

◇백가쟁명식 FTA 해법 난무..국민은 혼란스럽다
ISD를 내세워 '한미 FTA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은 국민투표 통해 사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수차례에 걸쳐 "ISD 등 한미FTA의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재재협상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며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 토론을 거쳐 19대 총선에서 묻든지 국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용섭 대변인도 "재협상에 착수하든지 아니면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야권이 다수당이 되면 미국과 재협상을 추진하자는 것이 민주당의 안(案)"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ISD의 소송주체를 투자자 대 국가'가 아닌 '국가 대 국가'로 바꿔 외국인 투자자의 소송 남발 가능성을 줄이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한미 FTA를 그대로 두고는 민주진보진영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서민정책을 펼칠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한미 FTA 재재협상 그리고 폐기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장과 허세로 뒤덮인 한미 FTA 논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트위터 논객으로 떠오른 박동천 전북대 교수는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이행법 제정, 국회 차원의 재재협상 추진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 "재재협상, 국민투표 요구는 정치공세"
정부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 공세"라고 반박한다.

우선 국민투표 회부 주장은 조약의 체결권한을 대통령에게,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국회에 부여한 헌법의 조항과 맞지 않고 자칫 FTA를 체결할 때마다 반대주장을 국민투표로 수용해야 하는 전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SD 폐기를 위한 재재협상에 대해서도 협정문에 손을 대면 미국도 비준안을 다시 통과시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수용불가를 강조했다.

이행법 제정안과 관련해선 "헌법 6조1항에 따라 조약은 국내법 체제에 수용되면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지만 미국은 이행법이라는 매개를 통해 국내법 체제로 수용된다"며 양국의 법체제 차이로 볼 때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는 대신 최근 미국과 설치에 합의한 '서비스. 투자 위원회'를 통해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석영 통상교섭본부 FTA교섭대표는 "서비스·투자위원회는 협정 이행과 관련해 어느 한쪽 당사국이 제기하는 어떠한 이슈도 다룰 수 있다"면서 "협정발효 후 90일 이내 첫 회의가, 이후 매년 회의가 열리는 만큼 이를 통해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FTA 재재협상 가능" vs "ISD 대응력 키우는게 현실적"
재재협상에 대한 정부의 이같은 부정적 인식은 죽어가던 FTA 불씨를 가까스로 재협상을 통해 살린 상황에서 또다시 수정제안이 이뤄질 경우 한미 FTA는 영영 복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계에서는 재재협상 가능성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ISD의 폐기론보다는 추후 이로 인해 발생할지 모를 우발 상황에 대비해 대처능력을 키우는게 현실적이라는 타협책이 우세한 상황이다.

김동천 교수는 "미국 무역대표부 관료들로서야 짜증낼지도 모르지만 주권 국가로서 협정비준에 앞서 따질 만큼 따지는 것은 국제 표준으로 확립되어 있는 권리"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필요하다면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신희택 서울대 법대 교수는 "ISD를 협정에서 빼려면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제도를 미국과의 협정에서만 빼자고 하는 건 명분과 실익이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FTA를 현 협정문대로 받을거냐 말거냐는 선택만 남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야당이 주장하는 ISD 분쟁가능성은 분명 있는 거니까 정부 내 시스템 구축,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국가의 분쟁예방기능을 강화하고 대응역량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관점에서 한미 FTA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요인이 훨씬 많다"면서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경제가 도약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