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내린 빗물 이제 방콕 도착…국토가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
"방콕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장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태국은 역사상 단 한번도 외부 침략에 굴복한 적이 없던 국가다. 그러나 쏟아져 들어오는 물로 인해 수도인 방콕의 1000만명 시민에게 대피를 권고했다. 35㎞ 앞의 바다가 만조가 되는 이번 주말이 고비다. 방콕의 도로를 파 물길을 내는 방법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바닷물이 거꾸로 밀려올 가능성이 크다. 방콕을 비롯한 태국은 거대한 호수에 빠져 침몰하기 직전의 신세가 됐다.

◆강물 9억t 유입됐는데 40억t이 더…

방콕은 간간이 햇볕도 난다. 그러나 물은 계속 불어난다. 때이른 비가 많이 왔고,이를 통제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태국의 우기는 보통 5~6월에 시작된다. 그러나 올해는 4월부터 폭우가 내렸다. 4월 이후 지금까지 7개월간 내린 비의 양은 약 2000㎜로 최근 30년간 연평균 강수량(1400㎜)을 43% 초과했다. 뉴욕타임스는 "잦은 태풍과 폭우는 라니냐 탓"이라고 보도했다.

저수용량이 한계에 다다른 태국 주요 댐들은 7월부터 방류를 시작했다. 태국 북부지역 4대강인 왕,핑,욤,난 강에서 물이 넘치기 시작한 게 이때다.

배수능력이 떨어지는 태국의 특이한 지형은 화를 부채질했다. 태국은 북부 산간지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지다. 4대강이 합류하는 수코타이에서 짜오프라야강이 끝나는 지점인 태국만까지 총 372㎞다. 이 구간의 해발고도는 약 2m.경사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속은 시속 2㎞에 불과하다. 좀 과장하자면 태국의 건기인 지난 4월 북부 지역에 내린 비가 지금에야 방콕을 지나고 있다는 말이다. 홍수 때 한강의 평균 유속은 약 시속 8㎞다. 지금까지 방콕에 들어온 물은 약 9억t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약 40억t의 물이 방콕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악어농장에서 악어 수만마리가 도심으로 탈출했다는 소문도 있다. 홍수대책본부를 이끌고 있는 쁘라차 쁘롬녹 법무부 장관은 28일 태국 시민들에게 "방콕을 떠나라"고 권고했다.

◆주말 바닷물 역류 여부가 고비

홍수의 최대 고비는 바닷물 만조 때가 겹치는 이번 주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짜오프라야강의 수위는 2.4m에 달해 있다.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강물이 바다로 못 흘러들어갈 뿐 아니라 바닷물이 역류해 밀고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홍수 방지벽의 높이는 2.5m에 불과하다. 홍수방지벽 86㎞구간에 1000만개의 모래 주머니를 설치하긴 했지만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지류에서 흘러들어온 물로도 방콕에 물난리가 났는데 짜오프라야강이 넘친다면 방콕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게 분명하다.

태국 정부는 지난 27일 방콕을 포함한 21개 지역에 5일간 공휴일을 선포했다. 방콕 제2공항인 돈므앙 공항도 폐쇄했다. 교육부는 다음달 7일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탈출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방콕의 시외버스터미널과 공항,기차역에는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차편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뗏목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 국방부는 병력 5만명에게 긴급 출동 대기명령을 내리고 배와 트럭을 1000대씩 준비했다.

태국에선 매년 크고 작은 홍수가 나 치수사업이 중요한 정책이다. 2005년 총선에서 압승한 탁신 친나왓 정부는 대규모 치수사업을 계획했지만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2개월 전 정권을 잡은 탁신의 여동생 잉락 총리는 인기 회복을 위해 임금 인상과 쌀 고가 매입 등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냈다. 태국의회는 지난 26일 3250억바트(11조9210억원)의 피해복구 자금지원방안을 뒤늦게 마련했지만 정부의 무기력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