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30분을 달리면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나타난다. 수십 개에 달하는 이들 건물 벽에는 에릭슨 지멘스 IBM 인텔 HP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로고가 붙어 있다. 이들 기업의 연구소들이다. 스웨덴 정부가 1970년대 IT 산업 발전을 위해 세운 시스타 과학 단지의 풍경이다. 185개국 700여개 업체가 입주한 시스타 과학 단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굵은 선 세 개가 비스듬히 그어진 에릭슨의 로고다. 스웨덴 간판기업인 에릭슨 본사도 시스타 과학 단지 내에 있다.

에릭슨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다. 시장 점유율은 2010년 말 현재 35% .전 세계 이동통신 이용자의 40%는 에릭슨 장비를 이용해 휴대폰을 사용한다. 스웨덴은 이 회사의 장비를 이용해 2009년 세계 최초로 4세대(4G)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시작했다.

본사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전시관 '에릭슨 스튜디오'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에릭슨 회장(46)을 만났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베스트베리 회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모바일 혁명'의 흐름에 대해 묻자 바로 유성 펜을 들고 두꺼운 유리로 된 테이블 위에 글씨와 기호를 섞어 써내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몇 년 뒤면 50억명의 무선데이터통신 이용자가 500억개의 기기를 이용하는 네트워크 시대가 올 것"이라고 역설했다.

▼현재 통신 및 IT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 가지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 먼저 개인의 일상생활과 기업 활동 등이 모두 모바일로 전환되는 '모바일 에브리싱(mobile everything)'이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클라우드서비스와 다양한 기기들이 자동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사물간통신(M2M) 기술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다. 두 번째로 스마트폰 태블릿PC 전자책 등 다양한 단말기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기기는 서로 연결돼 새로운 생활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사업자들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통신업계 CEO로서 무엇을 눈여겨보고 있나.

"전 세계 휴대폰 가입자는 55억명으로 약 15억명인 인터넷 가입자 수의 3.5배에 달한다. 앞으로는 무선 데이터 통신을 이용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2016년이 되면 전체 휴대폰 이용자 80억명 가운데 50억명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사용할 것이다. 모바일 기기의 숫자는 더욱 빠르게 늘어 2020년까지 500억개의 디바이스가 서로 연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네트워크 사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10~20년 동안 이동통신 이용 방식이 완전히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휴대폰을 통해 음성 통화라는 하나의 통신 방식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

▼네트워크 사회의 등장은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업 부문에 있을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미 물류 산업의 경우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컨테이너 흐름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산업이 모바일 기술의 영향을 받아 변화할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 분야도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의 경우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는 1명이다. 농촌에서는 1명의 의사가 6000명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모바일 의료시스템을 도입하면 공중 보건 수준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신흥국에서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데 어떤 기술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나.

'M2M'(Machine to Machine)이 미래 모바일 환경의 핵심이 될 것이다. M2M은 기기들이 원격으로 작동되는 수준을 넘어 중앙의 컴퓨터로부터 지시를 받아 자동으로 구동되거나 데이터를 수집 · 분석하는 기술이다. 이 부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자체 연구 · 개발(R&D)은 물론 관련 업체를 인수 · 합병(M&A)할 생각도 있다. "

▼최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에릭슨의 전략은.

"지난해 매출 280억달러 가운데 40%를 서비스 분야에서 거뒀다. 이동통신사 대신 통신망을 관리하거나 통신망 구축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하는 사업 부문이다. 최근에는 △소방 치안 등 공공 안전 △인터넷TV(IPVT) 등 미디어 △M2M을 이용한 인프라 분야에서 신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들 분야의 공통점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밀접하게 결합된다는 점이다. 통신 장비에서도 하드웨어는 그대로 둔 채 소프트웨어만 바꿔 성능을 높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

▼회사 조직 자체도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위해 바뀌고 있는가.

"R&D 분야에서도 아예 소프트웨어만 따로 개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인 스마트 빌링시스템의 경우 대규모 데이터 관리 및 분석 기술이 핵심이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모두 규모로는 글로벌 10위 안에 들어간다. 이런 변화는 최근 2~3년 사이에 일어났다. 인력 충원이나 조직 구조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

▼요즘 글로벌 IT업계의 M&A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모든 산업 분야가 밀접한 연관을 맺어가면서 통신 기술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 현재 에릭슨이 보유한 기술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술의 빠른 변화로 '구멍(hole)'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부족한 부분에서 M&A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좋은 방법이다. M2M 분야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

▼세계적으로 특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특허 분쟁의 원인은 모든 IT업체들이 모바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분야는 서로 기술을 공유해왔다. 어떤 곳에서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기술을 공유해야만 한다. 에릭슨은 무선 통신 기술을 차별 없이 라이선싱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새로운 업체들이 모바일 시장에 뛰어든다면 이들도 기존 업체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내고 라이선스를 취득해야만 한다. 에릭슨만 해도 매년 30억유로를 투입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게 바로 '게임의 규칙'이다. "

▼지난해 옛 LG노텔의 노텔 측 지분을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추가 투자 계획이 있는가.

"LG에릭슨이 출범하기 1년 전인 2009년부터 한국을 아주 중요한 시장으로 봐왔다. 한국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는 시장이다. LG에릭슨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다른 한국 업체들과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으며 R&D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대규모 신규 투자는 없을 것이다. "


◆ 베스트베리 회장은…20년 근속 '에릭슨 맨', 재무ㆍR&D 두루 거쳐

한스 베스트베리 에릭슨 회장은 1991년 스웨덴 웁살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년 동안 줄곧 에릭슨에서 일해온 '에릭슨 맨'이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는 2010년 1월 임명됐다.

중국 브라질 칠레 미국 등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왔다. 재무 인사 영업 등 연구 · 개발(R&D)을 제외한 나머지 직책을 모두 거쳤다. 특히 2003년 글로벌 서비스 사업부문장으로 취임한 이후 4년 동안 해당 사업부 매출을 3배 이상 끌어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7년부터 회장 취임 전까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에릭슨의 안살림을 책임졌다.

골프 등의 스포츠를 즐기며 2007년부터 스웨덴 핸드볼 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슬하에 자녀 2명을 두고 있다.

스톡홀름=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